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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명품 시계, 사람들은 왜 시계에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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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명품 시계, 사람들은 왜 시계에 열광할까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8.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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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역사와 발전사, 아날로그 감성을 깃든 수공예 시계가 명품으로 거듭난 이유
손목시계 / 픽사베이
손목시계 / 픽사베이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시계를 가지고 있는가. 주변에도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스마트폰이 있기에 시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는 손목시계가 필수이지만) 어린 세대 중에는 아날로그시계를 아예 읽을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세상의 변화가 이렇게 빠른가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시계는 실용성보다는 고급 사치품이나 패션용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명품 시계는 수십만 원부터 수백, 수천만 원까지 올라가 정말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비싸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물이나 선물용으로도 아주 각광받는 물건이다.

이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라는 것이 사회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생활에 규칙을 부여해 사회를 좀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오늘날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시간을 알 수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연을 이용한 원시적 시계

인류는 다양한 문화와 사회 속에서 각자 여러 기준의 시간과 시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아무것도 없던 옛날에 정확한 시간을 측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이용해 시간을 정했다. 이후에는 자동화된 기계를 사용하는 등 점차 더 편리하고 정확한 방법을 찾게 됐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시계는 자연을 이용한 해시계와 물시계였다. 태양은 그 자체가 거대한 시계였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통해 태양빛이 계속 변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막대를 땅에 꽂고 시간을 측정했다. 해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기원전 1500년 이집트부터 시작했다. 오늘날 시계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도 태양의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이동한 데에서 유래된다.
 

장영실이 발명한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제845호) / 문화재청
장영실이 발명한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제845호) / 문화재청

하지만 해시계는 야간이나 우천 시에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고, 그래서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물시계는 물을 담은 통에 눈금을 새기고 작은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수심에 따라 눈금이 맞춰져 시간을 알 수 있게 하는 구조였다. 초창기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 해시계와 물시계를 사용했다.

세종대왕 당시 만들어진 '자격루'도 유명한 물시계이다. 기존 물시계는 정확하지 않고 물을 자주 채워줘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시계가 틀리면 관리원이 처벌받곤 했다. 세종대왕이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 장영실에게 명해 새롭게 제작된 것이다. 자격루가 기존의 것보다 뛰어난 점은 동력을 이용해 반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원된 장영실의 자격루, 현재 창경궁에 있는 국보제299호 자격루는 이후 중종때에 만든 것이다. / 문화재청
복원된 장영실의 자격루, 현재 창경궁에 있는 국보제299호 자격루는 이후 중종때에 만든 것이다. / 문화재청

자격루의 물은 아래에 있는 항아리로 줄줄이 떨어지고 이윽고 수수호라는 기둥에 흘러간다. 물이 차면 부력으로 인해 수수호의 살대가 위쪽의 쇠구슬을 건드린다. 쇠구슬이 움직여 동판을 건드리고 동력에 의해 나무를 조각한 인형이 징과 북을 쳐 시보장치를 움직인다. 그리고 배치된 12지신이 1시부터 12시까지의 시간을 알렸다.

이외에도 모래가 빠져나가는 시간을 측정한 모래시계, 초가 타는 시간을 측정한 양초시계도 쓰였다. 이러한 자연을 이용한 원시적 시계들은 물론 오늘날만큼 아주 정확하게 단위를 나눠 측정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농사일, 종교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됐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기계식 시계의 출현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어 했다. 결국 자연을 이용하는 것에 벗어나 기계장치를 활용해 자동적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식 시계가 나타나게 된다. 기계식 시계의 유래는 중동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13세기 유럽에서 처음 발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계식 시계는 톱니바퀴와 밸런스 휠, 이스케이프 기어, 탈진기 등 다양한 기계부품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데, 태엽이나 추가 풀리면서 동력을 전달한다. 또한 각 톱니바퀴가 크기가 달라 서로 다른 시간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각 부품마다 초침, 분침, 시침을 지정하여 세세한 시간 단위를 모두 측정할 수 있게 된다.

기계식 시계의 종류는 크게 '추 낙하식'과 '태엽식', 두 가지가 있다. 추 낙하식은 탈진기에 연결된 톱니바퀴에 감긴 추에 달린 실이 풀리는 힘을 이용했다. 하지만 추가 커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시계탑 등 거대한 시계에만 사용됐다. 이후 15세기쯤에 나타난 태엽 방식은 추 대신 스프링 태엽을 이용하여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계가 만들어진다.

태엽식은 처음에는 시계 옆의 용두를 돌려 태엽을 일일이 감아주는 방식인 '핸드와인딩'을 사용했다. 이후에는 진자운동의 원리를 이용한 '오토매틱' 방식이 사용된다. 진자운동이란 추의 길이만 같다면 질량이나 진폭과 상관없이 한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정한 법칙을 말한다.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가 교회에 매달린 램프를 보고 원리를 발견했다.

오토매틱은 좌우로 추같이 움직이는 로터를 장착해 그 동력으로 움직인다. 더 시간이 정확했고 손으로 일일이 태엽을 감지 않아도 오랫동안 자동으로 돌아갔다. 갈릴레오 이후 호이겐스가 이 원리로 흔들리는 추를 이용한 진자시계를 만든다. 벽에 거는 뻐꾸기시계, 기다란 괘종시계 등이 대표적인 오토매틱 방식이다.
 

부품의 반을 덮고 있는 판이 로터이며 왼쪽에 달린 것이 용두이다 / 픽사베이
부품의 반을 덮고 있는 판이 로터이며 왼쪽에 달린 것이 용두이다 / 픽사베이

다양한 기술과 과학을 접목한 유럽의 시계, 꾸준히 발전하다

오토매틱은 탁상시계, 회중시계, 손목시계 등 조그만 시계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중세의 시계 장인은 작은 시계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했으므로, 다른 어떤 수공예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손기술을 갖추어야 했다. 시계는 왕족과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기에 화려한 장식을 더하기도 했다.

시계에는 나무와 보석, 금속공예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었고 실제로 시계공들은 대장장이나 자물쇠공, 금속세공업자를 함께 겸했다. 당시 유럽에서 시계산업은 기술의 표준이었다. 시계공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정확하고 간편한 시계를 만드느냐이다. 그래서 계속 꾸준히 연구를 거듭했고 19세기에는 금속 태엽이 발명되어 시계가 더 가벼워지고 소형화되었다.

유럽에서는 특히 스위스의 명품 시계가 명성을 떨쳤다. 스위스 시계의 역사는 16세기 종교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온 프랑스 시계공들에 의해 시작됐다. 제네바는 당시 수공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이기도 했다. 또한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1541년 제네바 시장이 되면서 보석을 금지하자, 제네바의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금속세공업자들이 시계 만드는 일에 뛰어들면서 더 많은 경쟁이 이뤄졌다.

유럽의 시계는 동양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은 명나라 때부터 서양 시계가 전해졌고, 우리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머물던 소현세자가 서양인 신부의 자명종을 신기하게 여겨 다른 서양 문물과 함께 들여왔다. 이후 숙종은 자명종을 본뜬 새로운 기계식 시계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괘종시계 / pixnio
괘종시계 / pixnio

현대의 시계 산업, 아날로그 감성을 흔들다

1927년 미국에서 전기가 충전된 배터리(건전지)를 장착한 '쿼츠시계'가 발명된다. 쿼츠시계는 기존 다른 시계들보다 훨씬 정확하고 저렴하며, 내구성도 좋다. 이후 일본 업체, 세이코가 1969년부터 대대적으로 쿼츠시계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세이코는 기존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의 기계식 시계가 장악한 시장을 뒤엎어 버렸다.

쿼츠시계는 시계를 대중화시켜 그동안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시계를 이제는 대중들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없어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열광하는 명품 시계가 대부분 기계식 시계이다. 또한 옛날 괘종시계나 회중시계도 골동품으로 취급되어 상당히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무겁고 불편하고 번거로운데도 왜 기계식 시계가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는 것일까. 그것은 스위스 시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이코에 의해 밀리게 된 스위스 시계는 전략을 바꿨다. 평범한 대량생산 시계 대신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었고 고가의 제품을 소량으로 판매하는 고급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 / 픽사베이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 / 픽사베이

스위스 시계는 장인이 직접 손작업으로 제작한 소량의 명품 시계임을 강조했다. 물론 실제 기능은 전자시계보다 못한데, 어떻게 고급일 수가 있느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요즘은 휴대폰이 있으니 시계 자체를 구입할 이유가 없다. 이미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원래의 기능을 벗어난 지 오래다.

가장 정확한 답은 아날로그 감성에 있다. 현대인은 이미 전자기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전자기기에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은 조금 더 불편할지라도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고,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물건인 수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스마트 워치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시계도 출시되고 있다. 이미 애플워치가 지난해에 스위스 시계 판매량을 추월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량생산 시대에도 핸드메이드를 찾는 것처럼 수공예로 만든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옛 기계식 시계 시장이 그렇게 쉽게 몰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아날로그 시계는 시간을 가리키는 수단인 시계가 아니다. 예술 그 자체가 됐다. 잠시 주춤할 수는 있을지라도 아날로그 시계산업도 결국은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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