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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들은 어떻게 꾸몄나? 화장품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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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들은 어떻게 꾸몄나? 화장품 직접 만들었다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07.2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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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핸드메이드]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요즘은 마스크를 쓰느라 화장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장품 판매량도 급격히 줄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애경산업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1604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10.3% 감소했으며, 그중 화장품 판매량이 10%로 급격히 줄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K-뷰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 시즌마다 새로운 화장품을 개발해 출시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용한 화장품의 모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조선시대 사용한 화장품의 모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 옛날 조선시대는 뭐든 만들어서 쓰던 수공예의 전성기인데, 화장품은 어땠을까? 지난 2016년, 남양주 화협옹주의 묘에서 청화백자합 10점, 분채(粉彩) 1점, 목제합 3점, 청동거울과 거울집, 목제 빗 등이 발견됐다.

비교적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발견돼 조선 시대 왕실 여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귀중한 학술자료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에서는 화협옹주가 남긴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여인들은 어떤 화장품으로 어떻게 화장을 했는지 분석했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은 조선시대부터 유행

조선시대는 지금과는 미의 기준이 달랐을 것 같지만, 당시 화장품이나 화장법을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아보인다. 그 당시에도 희고 깨끗한 피부가 고귀함의 상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것이 화장품 판매점이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화장품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매분구’가 피부전문가이자 관리사이자, 판매원이었다. 이들을 통해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 단장을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유행이었다는 것이다. 깨끗한 피부에 수분감 있고 윤기있게 보이도록 해주는 ‘담장(淡粧)’이 바로 그것이다.

미안수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미안수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수수하고 옅게 화장을 함’이라는 뜻의 담장은 미안수(美顔水)와 면약(面藥)을 사용했다. 미안수는 지금의 스킨, 토너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식물을 주원료로 사용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박줄기를 잘라 즙을 받아 내거나, 수세미를 삶았다. 또는, 익모초, 오이·수박·토마토·당귀·창포·복숭아 잎·유자 등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피부가 깨끗해야 화장이 잘 된다는 것을 그 당시에도 알았던 듯하다.

면약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면약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면약은 지금으로 따지면 로션, 수분크림과 비슷하다. 얼굴에 적당한 유분을 공급해주는 역할로 돼지기름, 동백기름, 참기름 등의 동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화장품 제조술은 뛰어난 듯하다. 한국민족대백과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서 발매한 화장수(化粧水, 상품명 朝の露) 광고문안의 첫 구절이 “조선의 최신제법으로 제조한……”이었다고 한다. 일본도 그만큼 우리나라의 기술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눈썹과 입술 연지는 시집갈 때

조선시대에는 담장만 해도 지금의 ‘데일리 메이크업’이었지만, 시집갈 때는 더 화려하게 꾸몄던 것 같다. ‘분대화장’이라고 부르는 화장법은 담장에 이어 분칠, 눈썹, 입술과 볼 연지를 하는 색조 메이크업이다.

실면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실면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먼저, 화장을 하기 전에 명주실을 이용해 솜털을 뽑으며 피부결을 정리하는 ‘실면도’를 해줬다. 요즘의 왁싱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는 지금도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 종종 행해지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털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트러블이 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 나면 화장이 잘 먹는다고 한다.

백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백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피부를 희고 깨끗하게 표현해주는 화장품으로 ‘백분(白粉)’과 ‘연분(鉛粉)’이 사용됐다. 지금의 파운데이션과 비슷하다. 보통 쌀가루, 분씨가루 등을 사용하는 것이 백분이다. 조개껍데기의 가루나 진주가루 등을 넣어 광채와 백색도를 더하기도 했다.

백분에 납을 넣어 접착력과 지속력을 높인 것이 연분이다. 백분은 주로 서민들이 사용했으며, 청나라에서 주로 수입했던 연분은 왕실 여인이나 기생들이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납 성분이 들어가 있어 오래 사용하면 중독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백분은 사진처럼 면포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두드리며 칠해주었다. 지금의 퍼프와 같은 역할이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백분은 사진처럼 면포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두드리며 칠해주었다. 지금의 퍼프와 같은 역할이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또는 색을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송화가루나 황토를 더한 황색분은 양반이나 사대부 여인들이 주로 사용하고, 주사 등의 붉은 색분을 넣어 분홍빛을 내는 색분은 기생들이 주로 사용했다. 색분을 기름에 개어바르기도 했다.

연지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연지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연지를 볼에 칠할 때는 도장으로 찍어, 손으로 펴발라 주었다. 요즘의 블러셔와 같은 역할이다. 요즘도 블러셔가 따로 없으면 립스틱, 립글로즈 등을 볼에 묻혀 사용하기도 한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연지를 볼에 칠할 때는 도장으로 찍어, 손으로 펴발라 주었다. 요즘의 블러셔와 같은 역할이다. 요즘도 블러셔가 따로 없으면 립스틱, 립글로즈 등을 볼에 묻혀 사용하기도 한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연지의 재료가 되는 홍화(잇꽃) / pixabay
연지의 재료가 되는 홍화(잇꽃) / pixabay

그 다음은 빨간 입술을 만들어주는 ‘연지(臙脂)’. 석류나 홍화꽃을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으로, 기름과 노른자를 첨가에 발림성을 더했다. 볼과 입술에 발라주며, 요즘의 립스틱 또는 블러셔라고 할 수 있다. 연지를 입술에 바를 때는 붓으로, 볼에 바를 때는 도장으로 찍어주었다.

미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미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나뭇가지 등에 미묵을 묻혀 그려주었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나뭇가지 등에 미묵을 묻혀 그려주었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마지막으로 미묵(眉墨)으로 눈썹을 그려준다. 나무나 꽃잎을 태운 재를 참기름, 동백기름 등에 풀어서 사용했다. 이렇게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천연화장품을 만들었던 것이 조선시대의 화장품이다.


머리카락이 풍성하면 미인! 가체 금지령까지 내려져

희고 깨끗한 얼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윤기나고 건강하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미인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행했던 것이 ‘가체(加髢)’다. 사극 속 중전이나 기생으로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모습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발이다.

가체 또는 다리라고 불렀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가체 또는 다리라고 불렀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가체를 올린 모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가체를 올린 모습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가체는 ‘다리’ 또는 ‘다래’라고도 불렸으며, 더 크고 무거울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주로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사용했다. 남자들이 몇 년간 잘 관리하며 길렀다가 팔아 품질이 좋은 가체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가격도 매우 비쌌다. 머리카락만 있다고 해서 가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마다 모질과 색이 달랐기 때문에 당주홍, 홍합사, 황밀, 송진, 진사, 주사, 마사, 홍향사, 연지, 소금, 참기름 등 다양한 성분 분말로 만든 용액에 수거한 머리카락을 담가 곧게 펴고 검정색으로 탈색했다고 한다.

신윤복의 미인도, 풍속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얹은머리(트레머리) / 문화재청
신윤복의 미인도, 풍속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얹은머리(트레머리) / 문화재청

또한, 시대적으로는 경제력의 상징으로도 나타나 양반층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층 부녀자에게도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그 무게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나이 어린 신부의 방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자 갑자기 일어나다 머리 무게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가체를 마련하지 못한 집에서는 혼례를 치르고도 시부모 보는 예를 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가체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자, 영조 때는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용하게 하는 ‘가체금지령’을 내려 이를 바로잡고자 했고, 정조 때 사대부의 처첩과 여염의 부녀는 가체는 물론 다리를 보태는 것도 금지하고, 천한 신분의 여인은 머리를 얹는 것은 허용하되 다리를 드리거나 더 얹는 것을 금하는 내용의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루어지지 않다가 순조 때에 이르러 사라졌다.


중국, 일본에서 들여온 화장품은 ‘왕족’이 썼다

서민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천연화장품을 썼다면, 화려한 궁중문화를 자랑하는 왕족 여인들은 어떤 화장품을 사용했을까? 왕족 여인들은 쓰는 화장품의 용기부터 달랐다.

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유물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유물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지난 2016년 화협옹주의 묘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대부분 화장품, 빗 등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도구가 많았다. 화협옹주(和協翁主, 1733∼1752)는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의 딸로, 사도세자의 친누나이며,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친고모다. 옹주는 어머니 영빈 이씨를 닮아 미색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만큼 치장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화장품 용기는 중국 청나라나 일본 에도시대에 만든 제품으로 분석됐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대부분 화장품 용기는 중국 청나라나 일본 에도시대에 만든 제품으로 분석됐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실제로 화협옹주는 국가에서 왕족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면세결(세금을 면제하던 논밭)을 보통 옹주가 받는 면세결의 2배였다. 묘에서 발견된 용기들을 보면 그 면세결을 대부분 화장품 구매 등에 썼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분석한 결과,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용기들은 대부분 청나라, 일본 등에서 수입한 것임을 확인했다. 또한, 이 안에는 백색, 붉은색, 갈색 등의 화장품 가루 등이 남아있었다. 대부분 연분, 연지, 면약 등 화장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용기 속 남아있는 화장품 내용물 중에서 개미가 나왔다. 화장품이나 치료제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화장품 용기 속 남아있는 화장품 내용물 중에서 개미가 나왔다. 화장품이나 치료제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용기 안에서 개미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여러 고서에 따르면, 개미에서 나오는 개미산을 화장품이나 환부 치료 등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0살에 세상을 떠난 화협옹주가 홍역을 앓았다는 것과 연관해보면 치료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천연화장품 만들기는 여전히 진행 중

조선시대는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다. 그래서 화장품도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것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천연화장품을 직접 만들거나, 천연성분만 들어간 화장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많다. 단순히 화장품의 기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분 하나하나를 분석해 나와 맞는 화장품을 찾는 것이다.

조선시대 화장품 재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조선시대 화장품 재현 / EBS 특집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무엇보다 조선시대의 화장품이 대단한 것은 지금의 화장품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기능만큼은 우수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화장품을 그대로 제작해서 사용한 결과, 미안수는 보습력을 유지시켜 줬으며, 백분은 피부의 밝기가 파운데이션을 발랐을 때와 비슷했으며 피부결 개선 효과도 있었다.

그만큼 조선시대 화장품은 건강한 재료를 사용함과 동시에 실용성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 연구과정에 참여한 연구진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세심한 공정을 거쳐서 단순한 치장이 아닌 진정한 피부 보호를 추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현대 K-뷰티도 식물 원료로 피부 효능을 극대화하려고 하는데 조선시대 화장품이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연 재료로 만드는 비누는 지금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여러 재료로 다양한 기능도 부각시켰다 / pixabay
천연 재료로 만드는 비누는 지금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여러 재료로 다양한 기능도 부각시켰다 / pixabay

몇 년 전에도 ‘웰빙’ 열풍 때문에 천연화장품 만들기가 매우 인기였다. 꿀, 밀가루, 계란노른자 등을 활용해 만드는 천연팩은 물론, 시어버터나 글리세린 등을 섞어 만드는 수제비누, 코코넛 오일 등으로 만드는 바디크림, 바셀린과 남은 립스틱 조각을 녹여 만드는 립밤까지 만드는 방법을 담은 책자도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은 워낙 화장품이 천연성분을 사용함은 물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등 체계적인 관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직접 만들기보다는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화장품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보니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조선시대의 화장품이 추구하는 피부표현에 대한 노력과 가치가 지금의 화장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재료가 가진 고유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용성 있는 제품을 만드려는 노력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몸에 좋지 않은 화학성분을 제거하는 5-free 등이 오래 인기를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화장품에 대한 자부심은 더욱 크게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오래 전 조상들이 직접 만들었던 그 역사로부터 화장품의 역사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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