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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의 예술 사랑, 유럽 최고의 예술도시 드레스덴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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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의 예술 사랑, 유럽 최고의 예술도시 드레스덴을 만들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8.1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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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만만 한 작센 공국의 제후, '아우구스트 2세' 예술을 통해 권력 과시
궁전 증축, 마이센 자기 발명, 예술품 수집 등으로 드레스덴을 유럽 최고의 예술 문화도시로 만들어
아우구스트 2세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아우구스트 2세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17세기 말의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에 이른 시대였다. 특히 이때 숙종과 영조는 조선 후기 중흥기의 기반을 다져갔다. 그런데 동시대에 유럽의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에는 숙종과 영조 이상으로 야심만만 한 군주가 있었다. 바로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Augustus the Strong, 1670~1733)'이다.

독일 드레스덴은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 관광도시이다. 도시 곳곳에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품이 즐비하며, 수많은 궁전,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오페라 극장 등은 유럽 예술의 진수를 느끼기에 부족한 점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이 드레스덴의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준 군주가 바로 아우구스트였다. 당시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다. 아우구스트는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으며, 폴란드 왕을 겸했다. 선제후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 자격을 가진 제후를 의미하는데, 제후들 중에서도 가장 위상이 컸다.

물론 신성로마제국은 형식적인 제국일 뿐이며, 황제는 허울뿐인 존재였다. 또한 겉으로는 선거로 뽑는다고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아우구스트는 야심만만 한 왕이었고, 선제후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폴란드 왕이 되기 위해 신교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귀족들을 매수하기도 했다.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 / 위키피디아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 / 위키피디아
마이센 도자기 타일로 만든 '군주의 행렬' / 픽사베이
마이센 도자기 타일로 만든 '군주의 행렬' / 픽사베이

강건왕은 건축 마니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으리으리한 드레스덴 건물들

아우구스트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드레스덴의 유명한 궁전인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 '츠빙거 궁전(Zwinger)'도 아우구스트가 남긴 역작이다. 먼저 레지덴츠 궁전은 원래 13세기부터 작센 군주가 살았던 성인데, 1701년 대화재가 난 이후, 다시 지었다.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이 돋보이는 이 궁전에는 '군주의 행렬'이라는 길이 102m의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벽화가 있다. 25,000개의 마이센 자기 타일이 쓰인 벽화에는 작센 왕국 역대 군주들의 행진이 그려져 있다. 또한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드레스덴 대공습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성 안에 있는 교회와 박물관에는 각종 회화, 수공예품, 가구 등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최고의 보물들이 간직되어 있다.
 

츠빙거 궁전 / 픽사베이
츠빙거 궁전 / 픽사베이

츠빙거 궁전은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으로서 커다란 왕관이 놓인 크로넨문(왕관의 문)과 요정의 샘 연못, 그리고 궁전 내의 도자기 박물관에서는 마이센 및 동양 도자기 그리고 미술관에서는 루벤스, 램브란트, 뒤러 등 당대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츠빙거 궁전 서관에 있는 '그뤼네스 게뵐베 박물관(그린볼트)'은 전 유럽을 놓고 봐도 가장 큰 규모의 컬렉션을 보관하는 곳이다. 박물관의 뜻은 독일어로 둥근 천장이 있는 녹색 금고라는 뜻으로 원래는 녹색으로 기둥과 벽을 칠했다고 한다. 강건왕은 이곳에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보물 3,000여 점을 전시하여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강건왕은 이 박물관을 유럽 왕실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일부를 공개했다. 또한 강건왕의 뜻에 따라 청동, 상아, 금은 등 작품의 재질에 따라 이름을 짓고 작품을 전시했는데, '은의 방', '보석의 방', '상아의 방' 등 아주 다양한 방이 있다.

아우구스트는 이외에도 엘베 강변의 별궁으로 '필니츠 궁전'을 그리고 로코코 양식의 후베르투스부르크 성을 지었다. 또한 드레스덴 근교의 요새인 모리츠부르크성을 더 화려하게 증축했다. 아울러 폴란드 왕으로 활동하면서는 바르샤바의 왕궁을 더욱 화려하게 증축하여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데에 이바지했다.

이 정도면 아우구스트는 으리으리한 궁전과 성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거대한 경복궁을 무리하게 증건한 흥선대원군이나 온갖 궁궐 공사를 벌인 광해군을 능가하는, 성(城) 마니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마이센 도자기 / 위키피디아
마이센 도자기 / 위키피디아

도자기에 대한 집착, 마이센 자기를 낳다

아우구스트가 또 하나 좋아했던 것은 도자기였다. 중국 도자기는 당시 유럽에서 진귀한 물건이었다. 왕과 귀족들은 중국 도자기를 구입해 자신을 과시하길 원했고 상인들은 동양과의 도자기 무역으로 폭리를 취했다. 오죽하면 도자기 하나가 유럽 중산층의 좋은 집 한 채와 맞먹는 가격이었고, '하얀 금'이라고 불렸을까.

아우구스트는 어찌나 도자기를 좋아했던지,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게 자신의 정예 기병을 제공하고 중국 청화백자 컬렉션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동양을 오가는 수많은 상인에게 도자기를 사들여 죽기 직전까지 3만 5000여 점을 모았다고 한다.

또한 아우구스트는 중국 도자기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 볼 생각까지 했다. 도자기 제작 기술을 토대로 군자금을 마련하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유럽 사신들이 중국에서 홀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열등감의 발현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청화백자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경, / 국립중앙박물관 및 도자기박물관 소장
중국 청화백자 장식 자기 세트 (1700~1720년)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및 츠빙거 도자기박물관 소장

강건왕은 유명한 연금술사 뵈트거를 불러 도자기를 만들 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을 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행착오 끝에 1709년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인 '마이센 자기'가 완성됐다. 이 놀라운 발명에 고무된 강건왕은 1710년에는 왕립 작센 자기 공장을 만들어 본격적인 생산을 하게 했다.

마이센 자기 등장 이후 작센은 아주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어찌나 아우구스트가 뵈트거를 혹사시키고 기밀 엄수에 신경 썼던지, 알브레히츠부르크성에 감금하여 가족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뵈트거는 오래 살지 못하고 1719년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 아우구스트 2세는 그동안 모은 도자기와 마이센 자기로 다시 한번 거대한 규모의 '도자기 궁전'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이곳에서 중국 황제와의 알현식까지 계획했고 이를 위해 직접 궁전 설계도를 그릴 정도였다. 하지만 끝내 궁전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911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검과 칼집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및 드레스덴국립미술관 소장
911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검과 칼집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및 드레스덴국립미술관 소장
강건왕 우아구스투스의 군복, 오른쪽 아래는 스웨덴군과의 전투에서 훼손됐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및 무기박물관 소장
강건왕 우아구스투스의 군복, 오른쪽 아래는 스웨덴군과의 전투에서 훼손됐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및 무기박물관 소장

아우구스트의 사치 덕분에 완성된 오늘날의 드레스덴

온갖 진귀한 아우구스트 왕의 수집품을 모은 '그린볼트 박물관', 마이센 자기와 중국 도자기를 모은 '도자기 박물관', 당대 유럽의 다양한 무기를 모은 '무기 박물관' 등 드레스덴에는 다양한 박물관·미술관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 15개 박물관이 모인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은 설립 460년을 맞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체이다.

이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은 지난 2017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하여 강건왕이 사랑한 왕실 예술품 약 13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 '왕이 사랑한 보물'을 성황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온갖 진귀한 왕의 보물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아우구스트 2세는 강건왕이라는 이명에 알맞게, 체격이 크고 힘이 굉장히 장사였다. 일설에 따르면 말편자를 맨손으로 구부렸다고 한다. 또한 사생아를 354명이나 만들 정도로 난잡하게 여색을 즐기는 난봉꾼이었다. 어찌나 심했는지 자신이 하룻밤을 보낸 여성이 알고 보니 딸이었다는 괴이한 소문도 전해진다.

강건왕의 예술 사랑도 사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했다기보다는 권력에 대한 과시 욕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또한 그는 폴란드 왕으로서 권력 강화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다가 폴란드를 분열시키고, 러시아가 집어삼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여색과 사치를 부리면서 서민들을 쥐어짠 폭군에 가깝다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우구스투스 덕분에 오늘날 드레스덴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예술 도시가 되었으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대대로 이어질 문화 도시를 만든 것이 업적이라면 이것도 업적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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