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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숨겨진 진실, 한복에는 원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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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숨겨진 진실, 한복에는 원형이 없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3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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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변천을 겪은 한복의 역사와 특징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은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아울러 세계의 다양한 민족은 고유한 자신의 전통 의상을 갖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환경에 알맞은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고 시대에 따라, 계급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변천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한복(韓服)은 어떨까. 사실 오늘날에는 우리의 전통 의상 한복을 입을 일이 많지 않다. 한복을 입고 길거리를 다니게 된다면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눈에 받을 정도로 한복이 더 이상 흔하지 않은 옷이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성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복고풍에 따라 한복이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원형 그대로가 아닌 현대 의상에 알맞게 개량한 경우가 많아 여기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한복의 역사를 잘 보면 한복은 원형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사동에서 열린 시대별 한복 복식 행렬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인사동에서 열린 시대별 한복 복식 행렬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한복의 특징에 대해

한복은 오랜 역사 동안 다양한 특징과 변천을 겪으면서 발전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한복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북방민족들의 호복(胡服) 형태를 토대로 하지만 중국 한족의 옷인 한푸(漢服)의 영향도 받아오면서 나름대로의 고유한 모습을 구축했다. 한복의 일반적인 특징은 바지, 치마 등의 하의와 저고리 등 상의가 구분된 이부식 형태에 두루마기, 포, 배자, 마고자 등의 겉옷을 입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체와 곡선으로 수치를 딱 맞게 만드는 양복과 달리 한복은 주로 직선으로 재단을 한다. 직선 재단은 천을 바닥을 대면서 곧바로 본을 뜬다. 이 방법의 매력은 만들면 옷은 평면적이 되나 입을 때에는 남는 부분이 다시 주름이 되거나 접히면서 새로운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흔히 한국인을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실제로 평상시 사람들은 단조로운 흰색 옷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것도 계급 별로 차이가 있는데, 상류층은 아주 다양한 색깔과 문양을 수놓은 옷을 즐겼다. 문양은 금박 또는 자수, 조각 등을 통해 만들었고 여러 기하학적 문양 혹은 동·식물 등의 형상을 새겼는데 이는 각각 길흉화복 등을 기원하는 상징을 갖고 있다.

직물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상류층은 값비싼 비단 등 견직물과 모시, 모직물 등을 사용했는데, 견직물 중에서는 명주가 가장 많이 쓰였다. 하지만 평민들은 비교적 구하기 쉬운 목화에서 나오는 무명, 마에서 나오는 삼베 등의 소재로 옷을 해 입었다.
 

쌍영총 거마행렬도에 나오는 고구려 복식 / 위키피디아
쌍영총 거마행렬도에 나오는 고구려 복식 / 위키피디아

한복의 역사에 대해

가장 오래된 한복 양식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인은 명주, 무명, 삼베, 모시 등으로 옷을 만들었고 검정, 흰색, 보라색 등의 저고리와 바지 및 치마를 입었다. 옷들은 북방 유목 민족의 영향과 전쟁에 대비해 활동하기 편한 것들이다.

백제와 신라 복식은 비교적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특히 통일 신라는 당나라의 관복 제도를 정식으로 들여오고 당나라 풍습이 유행하면서 화려한 복식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국시대와 남북국 시대는 자료의 부족으로 정확한 복식을 추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려시대에도 고유 일상 복식과 중국식의 의례 복식으로 나눠진 이중적 구조를 계속 이어간다. 이때는 점차 저고리가 짧아지고 허리띠 대신 옷고름이 생겼다. 여성의 치마는 길고 풍성해졌다. 고려 말기인 13세기 후반~ 14세기 전반의 '원 간섭기' 동안에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지배층에게 원나라 옷이 성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는 답호 모시, 견사로 짠 교직물로 만들었다 / 서울시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는 답호 모시, 견사로 짠 교직물로 만들었다 / 서울시

조선시대에는 한복이 더 헐렁하고 풍성한 형태가 되었다. 저고리는 다시 길어지고 여성의 치마는 폭이 넓어진다. 조선 복식은 고려와 비교하면 유교의 영향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검소하고 소박한 형태가 되었다. 특히 남존여비 사상의 확산으로 여성들은 외출시 장의 및 쓰개치마 등을 쓰게 되었다.

16세기 이후부터는 여성의 저고리가 급격히 짧아지는데,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커져 가슴까지 치마가 올라오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에는 폭이 좁고 허리부터 긴 헝겊을 안쪽에 대어 만드는 사폭바지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개화기 때에는 청나라에서 깃과 고름이 없고 단추가 있는 마고자, 조끼가 유입된다. 이들 조선 후기의 한복이 현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복의 이미지이다.

근·현대에 들어서 여성들은 짧은 치마 등 기존과는 다른 개량된 한복을 입게 된다. 이 복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부흥한 신여성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한복은 다양한 변천을 겪어왔다. 하지만 조선 후기부터 어느 정도 정착이 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한복은 1960년대까지 일상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대량생산된 서양 의상이 확산되면서 한복은 일상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혜원풍속도첩 간송미술관 소장, 19세기 추정 / 위키피디아
19세기 복식을 알 수 있는 '혜원풍속도첩' (간송미술관 소장)  / 위키피디아

한복 제작에 대해

한복 제작은 그 복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민과 지배층은 확연히 다른 이중적 특징을 보인다. 평범한 민중들은 주로 가내수공업을 통해 옷을 만들었다. 특히 집안일을 전담하는 부녀자들이 주도하여 집에서 베틀을 돌리며 직물을 짜곤 했다. 서민의 옷은 활동하기 편한 단색 위주의 옷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왕족, 귀족이 입는 옷은 만드는 과정이 더 복잡했기 때문에 전문 장인이 도맡아 만들었다. 특히 왕족의 옷은 국가에서 직접 전문 기관을 설치하여 다양한 장인을 두어 협업하에 만들게 했다. 이들 장인의 종류는 바느질로 옷을 짜는 '침선장', 금박장식을 다는 '금박장', 옷을 염색하는 '홍염장', '청염장' 자수를 넣어 문양을 만드는 '자수장' 등이 있다.

장인들은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의무적으로 옷을 만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옷을 만들어 양반과 서민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평민들도 일상복이 아닌 제례, 혼례 등 의식에 사용하는 옷은 장인이 만드는 고급 옷을 구입해서 입곤 했다. 하지만 옷이 워낙 비싸기에 대를 이어 물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복을 제작하는 침선장 / 문화재청
한복을 제작하는 침선장 / 문화재청

한복은 종류도 많고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면 제작이 힘들고 대량생산도 쉽지 않아 오늘날에도 바느질 등의 전통 수공예로 한복을 만드는 업체가 많다. 그렇기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고 이것이 오늘날 한복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현대식 공정과 새로운 디자인,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의 한복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한복의 변화를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사람들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조선 후기의 한복만이 진짜 한복은 아니다. 전통 복식이 과연 정해진 실체가 있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한복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변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복은 어떠해야할까. 최근 벌어지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냐, 새롭게 변화해야하느냐에 대한 논쟁에서 한복의 역사는 어느정도 이 논쟁에 답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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