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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보물’ 겸재 정선 화첩, 50초 만에 유찰…주인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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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보물’ 겸재 정선 화첩, 50초 만에 유찰…주인 못 찾았다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07.17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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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이슈!] 경매에서 연이은 문화재의 굴욕 이어져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지난 7월 15일, 신사동에 위치한 케이옥션 경매장에서 진행된 메이저 경매에는 전날부터 한 작품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바로 보물 제1796호 겸재 정선의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추정가는 많은 언론을 통해 50억원이라고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염계상련) /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염계상련) / 문화재청 홈페이지

그러나 당일 진행된 경매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사가 ‘50억’이라고 3번 호가하는 중에도 응찰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았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자, 시작가 50억원인 경매품이었지만 50초 만에 소장 및 관리 중인 우학문화재단, 용인대학교 박물관으로 돌아가게 됐다. 문화재의 굴욕이다.


겸재 정선이 70대에 그린 산수화, 인물화 담겨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단발령) /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단발령) /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표지 /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표지 /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재청에 따르면,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海嶽八景 및 宋儒八賢圖畵帖)’은 원숙한 필치와 과감한 화면구성이 돋보인다. 금강산과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8점,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8인의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가 8점, 총 16점이 수록돼 있다. 2013년 2월 28일 보물 제1796호로 지정됐다.

제작 시기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화풍이나 ‘정(鄭)’과 ‘선(敾)’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 2과(顆)의 사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대략 174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정선이 70대에 그린 작품인 것이다.

산수화에서는 화면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의 풍도가 넉넉하게 잘 표현되어 있으며, 고사인물화 역시 산수를 배경으로 유유히 자연을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고사인물화는 특정 시대를 지정하지 않고 중국의 현인이나 은자들을 두루 그려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화첩에서는 송나라라는 특정 시기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후기 문인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작품성이나 역사성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점으로부터’ 이우환 화백 작품은 15억 낙찰

이우환 화백 ‘점으로부터(No.770100)’ / YTN 뉴스 캡쳐(https://youtu.be/63SMse5Wuxg)
이우환 화백 ‘점으로부터(No.770100)’ / YTN 뉴스 캡쳐(https://youtu.be/63SMse5Wuxg)

이날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을 포함해 149개의 작품이 경매품으로 나왔다. 겸재 정선의 화첩 다음으로 추정가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No.770100)’. 케이옥션 홈페이지에 공개된 추정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9억원에서 25억원이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시작가 8억 5천만원으로 시작했으며, 15억 2천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No.770100)’는 150호 크기(181.8×227.3cm)의 캔버스화로, 세로로 긴 모양의 점 도장을 찍은 듯, 흰 물감이 일직선으로 나란이 줄을 지어 불규칙적으로 계속 찍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점은 진하고, 어떤 점은 연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른 ‘점으로부터’ 작품들도 비슷한 모양의 점을 회오리 형태나, 사각 형태로, 혹은 컬러만 다르게 해서 그린 경우가 많은 시리즈물이다.

1936년생인 이우환 화백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권위 있는 국제전에 참여한 이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다.

그러나 4년 전인 2016년에는 위작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시 홍콩 경매에서 이우환 화백의 위작 그림이 1억 8600만원에 팔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같은 해 2월 18일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경찰이 압수한 이우환의 작품 12점에 대해 과학감정, 안목감정을 실시한 결과 모두 위작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위작 의심 작품 13점 중 4점에 대해 2017년 1월 1심 재판에서 골동품상 이 모씨(68)와 화상 현 모씨(67)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4년이, 요청을 받아 그림을 그린 화가 이 모씨(40)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우환 공간에 방탄소년단 RM이 남긴 방명록. 팬들의 요청으로 이 방명록은 액자에 담아 전시 중이다 / 부산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이우환 공간’에 방탄소년단 RM이 남긴 방명록. 팬들의 요청으로 이 방명록은 액자에 담아 전시 중이다 / 부산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 / 부산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과 이우환 화백 / 부산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지난 2019년에는 세계적인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이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인 ‘이우환 공간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소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RM은 당시 부산 공연을 앞두고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분간 작품을 관람한 RM은 방명록에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라고 남겼다. ‘바람’ 시리즈는 이름처럼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을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RM을 따라 이우환 공간을 찾는 성지순례를 하고 있기도 하다.


경매에서 맥 못추는 문화재들

한편, 최고 추정가를 기록하다 굴욕을 당한 보물인 겸재 정선의 화첩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웃기거나 냉철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겸재 정선의 화첩인데 (중략) 아무도 호가를 안해서 유찰... 아쉽다. 내가 5만원이 부족해서 호가를 못(아무말)... 내가 소장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관련 기사에서 한 네티즌은 “겸재 정선 작품은 워낙 많이 시장에 나와있고 예술적 가치도 낮기 때문에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게 현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겸재 정선 화첩이 50억으로 경매장에 나오자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 / 문화재청 홈페이지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 / 문화재청 홈페이지

하지만 문화재 유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을 내놓기도 했다. 각각 15억원부터 경매를 시작했지만, 응찰자가 나오지 않아 모두 유찰됐다.

전문가들은 고미술품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거래된 문화재 연평균 4만 5000건 가운데 보물은 18건이었으며, 그중 4점이 경매에서 팔렸다.

보물 제1210호 청량산 괘불탱 / 문화재청 홈페이지
보물 제1210호 청량산 괘불탱 / 문화재청 홈페이지

지금까지 팔린 고미술품 중 최고 낙찰가는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낙찰된 ‘청량산 괘불탱’ 불화로, 35억 2000만원이다. 청량산 괘불탱은 보물 제1210호로, 1994년 10월 17일에 지정됐다. 조선 영조 1년(1725)에 그려진 석가의 모습이 단독으로 그려진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하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가로 4.5m, 세로 9m의 크기의 이 불화는 거대한 화면에 꽉 차게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석가의 모습을 그렸다. 석가는 보살처럼 화려한 장식을 하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이목구비는 작고 가늘지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우람한 체구와 좌우로 벌린 발이 인상적이다. 녹색과 붉은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옷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둥근 장식과 꽃무늬들은 이 그림을 한층 더 장엄하고 정교해 보이도록 한다.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 / 문화재청 홈페이지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 / 문화재청 홈페이지

두 번째 최고 낙찰가는 이번에 굴욕을 당한 겸재 정선의 작품이 실린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으로 2012년 케이옥션에서 34억원에 팔렸다. 퇴우이선생진적(退尤李先生眞蹟)은 조선시대의 서화가들인 이황(1501∼1570), 송시열(1607∼1689), 정선(1676∼1759), 정선의 아들 정만수, 이병연(1671∼11751), 임헌회(1811∼1876), 김용진(1883∼1968) 등의 글과 그림을 한데 모아 연대순으로 묶어낸 서화첩이다. 1975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어 보물 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는 18억원, 보물 1239호 ‘감로탱화’는 12억 5000만원, 보물 1683-2호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은 7억 5000만원, 보물 1521호 경국대전 2억 8000만원을 기록했다.

국보나 보물과 같이 국가 지정문화재는 개인 소장품인 경우 국외에 반출하지 않는 한 거래 내역, 소유자 변경만 문화재청에 신고하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또한 ‘문화재보호법’의 상속세 및 증여세 제12조에 따라 물려받은 문화재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경매장에는 종종 보물과 같은 문화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술품 재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만, 미술품이 최고가, 최저가나 낙찰과 유찰이라는 단어로만 평가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나 이번 겸재 정선의 화첩처럼 국가지정문화재는 개인 소유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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