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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익숙한 귀신, 도깨비를 소재로 한 문양인 '귀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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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익숙한 귀신, 도깨비를 소재로 한 문양인 '귀면문'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20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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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어떤 문화권에서든 기이한 괴담이 전해내려오며 독특한 귀신, 요괴들이 등장한다. 이것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각 문화권의 고유한 문화와 신앙을 보여주는 것들이라서 의미가 있다. 중국에는 강시가 있고, 일본에는 오니 등 수많은 요괴와 귀신, 괴물들이 있다. 서양에서도 늑대인간, 드라큘라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이러한 괴물과 귀신이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서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사후세계를 부정했고, 초자연적 현상 등을 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조선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억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내려온 토속신앙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에도 민간을 중심으로 계속 명맥을 유지했다. 구미호, 지네요괴, 처녀귀신 등의 크리쳐는 조선의 민담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귀신은 도깨비이다.
 

한국 도깨비 / 한국문화정보원
한국 도깨비 / 한국문화정보원

한국 도깨비와 귀면무늬

한국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와는 많이 다르다. 좀 더 사람처럼 생겼고, 성격도 온순한 경우가 많다. 가끔 해를 끼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복을 주기도 하는 등 일상에서 사람들과 꽤 많이 어울리는 존재였다. 도깨비가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모르나,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도 이미 있었던 것 같다.

도깨비는 그리고 우리 전통 공예품과 건축 등에 쓰이는 문양으로는 단골 소재였다. 도깨비를 표현한 것을 '귀면문(鬼面文)' 또는 '귀면 무늬'라고 한다. 유명한 사찰이나 궁궐의 기둥, 기와, 불단, 처마 밑 등을 살펴보면 이 귀면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이 귀면무늬를 애용했을까? 그것은 험상궂은 도깨비의 얼굴이 질병, 죽음, 재해 등을 몰고 오는 악귀를 내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이것을 벽사(辟邪, 악귀를 내쫓아 재앙을 막음)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벽사의 오랜 전통은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귀면의 표현은 전신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얼굴만을 묘사한 것이 많다. 얼굴에는 눈, 코, 입을 강조하였고 높이 솟은 코, 날카로운 송곳니, 뿔과 수염 등을 표현해 무시무시한 인상을 준다. 물론 도깨비의 표현 형태는 시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네팔의 힌두교 사원 문에 새겨진 키르티무카 조각 / 위키피디아
네팔의 힌두교 사원 문에 새겨진 키르티무카 조각 / 위키피디아

귀면무늬의 정체와 유래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귀면문은 인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의 힌두교 혹은 불교사원에도 귀면 무늬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키르티무카(Kirttimukha)라고 부른다. 도깨비와 모습이 흡사한 이 괴물은 인도 고대 신인 시바가 크게 분노하여, 이 분노에서 탄생했다는 전설이 있다. 사실 그 시기를 본다면 도깨비의 원조는 인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인도의 키르티무카가 중국에서 전래되어 중국에서는 도철문이라는 것이 되었고, 다시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귀면문으로 재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요괴 신인 치우천황을 형상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2002 월드컵에서는 붉은 악마의 공식휘장으로 치우천황을 묘사했는데, 신라의 귀면와를 토대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몇몇 학자들은 귀면이 도깨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귀면이 사실 도깨비가 아닌 용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통 우리가 아는 한국 도깨비는 인간과 비슷하다. 반면 귀면은 용의 얼굴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귀면와란 말 대신 용면와(龍面瓦)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도깨비의 모습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에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용과 도깨비를 혼동하는 일도 자주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용면와를 도깨비라고 왜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몇 차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에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경북 경주 안압지에서 나온 녹유 기와의 용모를 분석해, 이것은 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임 관장이자 기와 연구자인 김성구 관장은 예로부터 귀신과 용은 반드시 따로 묘사했으며, 용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일단 용어 자체는 귀면와로 굳어졌고 요즘은 또 귀면와를 도깨비와 여러 괴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절충하기도 한다.
 

고구려 기와 / 위키피디아
고구려 기와 / 위키피디아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산수귀문전 / 위키피디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산수귀문전 / 위키피디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양한 귀면문의 활용

삼국시대에서 이 귀면문이 많이 사용된 대표적인 예는 기와가 있다. 고구려의 기와(와당)도 귀면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퉁구 지방에서 나온 수막새 기와, 평양과 그 인근에서 나온 부고, 반와당 등이 있다. 기와에 새겨진 귀면은 아주 강건하고 사납게 보여,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하다.

백제에서는 귀면문을 사용한 기와가 그리 많지는 않으나, 부여군 규암면에서 출토된 문양전의 귀면문은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 신라의 경우에는 삼국시대에는 귀면문이 거의 없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자주 귀면문을 사용했다. 고구려의 것과 비교했을 때 신라의 것은 더욱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이 적용됐다. 또한 녹유(안트라센기름)를 발라 구워 만들어진 독특한 푸른빛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귀면의 표현이 더욱 다양해지고, 입체적이 되었으며 쓰임도 많아졌다. 예전 귀면과는 달리 더 인간적이고 해악적인 모습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마을 곳곳에 악귀를 쫓기 위해 세우는 조각상인 장승도 귀면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승의 귀면은 마을의 수호신이자 중요한 신앙물의 역할을 했다.
 

장승 / 픽사베이
장승 / 픽사베이
귀면 청동로(국보제145호) / 문화재청
귀면 청동로(국보제145호) / 문화재청
방상시탈 / 문화재청
방상시탈 / 문화재청

다양한 공예품과 도자기, 석상 등에도 귀면을 활용했고, 문고리의 경첩이나 자물쇠도 귀면을 많이 사용했다. 목제품에 덧대는 금속 장식이나, 대문의 자물쇠 등을 장석이라고 부르는데, 이 장석을 만들었던 장인은 두석장이었다. 두석장은 세심한 금속주조를 통해 도깨비 모습을 표현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각종 의례와 제사 등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방상시탈을 쓰고 춤을 추었다. 방상시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도깨비 귀신이었다. 탈은 방상시를 표현한 것인데, 눈이 네 개여서 꽤 무서운 인상을 준다. 양반들은 소나무를 깎아 탈을 만들었고, 서민들은 짚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의 다양한 요괴와 귀신은 예전에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겼던 '신앙'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 중에는 이제 이런 도깨비나 귀신의 존재를 믿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도깨비는 분명 오랫동안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함께 해온 초자연적 존재였다. 그리고 그 흔적이 다양한 문화재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것들을 깊이 인식하면, 우리 선조의 생활과 역사, 문화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에도 각 귀신과 요괴들은 독특한 이미지와 특징, 흥미로운 이야기로 인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도 낭만적인 옛 도깨비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예전에는 드라큘라, 늑대인간, 강시 등 외국 요괴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였지만 이제는 한류 문화의 경쟁력도 많이 올라왔다. 우리 옛 귀신과 요괴를 어떻게 재미있는 콘텐츠로 엮어낼 수 있을지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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