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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흉화복의 의미가 담긴 한국의 전통 디자인 소재, '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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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흉화복의 의미가 담긴 한국의 전통 디자인 소재, '길상'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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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우리의 옛 그림과 의복, 도자기, 공예품, 건축에 있는 문양은 왜 꽃이나 동물, 해와 달을 표현한 것이 많을까? 현대적 물건과는 비교되는 옛 물건의 주요한 특징이 바로 이러한 자연의 소재를 묘사한 그림과 문양이다. 자연을 주제로 한 소재를 선조들은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옛날 문양과 색상을 촌스럽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옛날에는 흔했지만 현대에 급격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촌스럽다고만 하기에는 옛날 문양과 색에는 나름대로의 깊은 뜻과 매력이 있다. 왜 선조들은 자연의 소재를 좋아했을까? 예로부터 선조들은 동식물과 해와 달, 바다에 의미를 부여했고 이를 표현하면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빌었다고 한다. 이를 길상(吉祥)이라고 한다.
 

복주머니 / 위키피디아
복주머니 / 위키피디아

한국의 전통 민속 신앙 '길상'

길상은 한국인의 일종의 민속 신앙이었다. 옛날 미술과 공예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서 종교적 의미를 넣는 경우가 많았다. 십자가나 다른 여러 종교적 문양을 넣은 부적이나 액세서리 등을 하고 다니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이 하는 우리 전통 관습은 설날 때에 복주머니를 만들어 한해의 복을 비는 것이다. 복주머니에는 수(壽)·복(福)·부(富)·귀(貴)를 수놓았다. 수는 '장수', 복은 '복', 부는 '부유함', 귀는 '귀함'의 의미가 각각 담겨져 있다. 길상 문양은 이처럼 설날 등 여러 절기와 세시풍속에 쓰였는데, 하지만 특별한 날에만 길상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길상의 사전적 의미는 '운수가 좋을 조짐', '좋을 일이 있을 징조' 등이다. 한국의 길상은 도교와 유교, 불교 그리고 원시적인 무속 신앙이 뒤섞여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상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형성되어 자리 잡았고 특히 민간에서는 중요한 민속 신앙으로 기능했다.

동양인들은 세상의 모든 일은 물론 개인의 인생의 길흉화복과 흥망성쇠가 음양오행, 신령적 존재, 천지의 기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러한 길상을 통해 복을 빌고 액운과 재앙을 막고자 한 것이다. 이를 기복 사상이라고도 한다. 특히 다산, 풍요와 부귀, 출세, 장수 등을 많이 빌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목적이었다.

길상과 기복은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유교는 신적 존재,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미 길상 사상은 한국인의 오랜 의식 체계로서 스며들었다. 그래서 서민과 양반 등 민간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에서도 계속 길상을 기원했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게 된다.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호작도 출처 / 위키피디아, 작자 미상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호작도 / 위키피디아, 작자 미상
봉황 문양 / 픽사베이
봉황 문양 / 픽사베이

각자 다양한 뜻을 가진 동식물의 상징

다양한 동물들은 저마다 뜻을 가지고 있다. 먼저 물고기는 출세, 성공을 의미했다.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물고기가 황하를 올라 용으로 승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호랑이는 액운을 물리치는 굳센 동물이라고 믿어졌다. 두루미와 거북은 장수, 원앙은 부부금슬, 나비는 기쁨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실재하지 않는 동물도 길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봉황은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가졌고 기린은 장수와 다산을 나타냈다. 특히 동양 미술에서 많이 쓰인 동물은 용이다. 용은 온갖 동물의 수장으로 권위와 입신, 복과 풍요를 다양하게 상징했다. 조선에서는 용 무늬를 왕실에서만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다.

도깨비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한 소재였다. 도깨비를 귀면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 도깨비는 귀신과 여러 나쁜 기운을 내쫓는다고 믿었기에 마을에는 도깨비를 표현한 장승을 세웠고, 건물의 기와나 문고리의 쇠 등에도 귀면 무늬를 새겨 넣었다.

식물 역시 다양한 뜻이 있었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었고, 국화·난초·대나무·매화 등은 선비의 기개와 덕을 상징하여 유교에서 특히 좋아하는 소재였다. 또한 연꽃은 불교에서 좋아했던 소재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도 뿌리를 내리면서 더러워지지 않아 속세에 물들지 않은 깨끗함과 다산, 생명을 상징한다.
 

용과 태극 문양을 그려넣은 북 / 픽사베이
용과 태극 문양을 그려넣은 북 / 픽사베이
다양한 전통 문양을 새긴 다식 / 위키피디아
다양한 전통 문양을 새긴 다식 / 위키피디아

그림과 공예, 건축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 길상

길상도(吉祥圖)는 무병장수와 좋은 일을 상징하는 다양한 자연과 동식물이 그려진 길상 그림을 총칭한다. 호랑이와 까치 등을 그린 '호작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까치가 호랑이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그린 '모란도'와 길한 운세와 음양을 상징한 해와 달 등을 그린 '일월산수도'도 길상도의 일종이다.

'십장생'은 도교에서 장생 불사를 상징하는 10가지인 해·산·물·돌·소나무·달·불로초·거북·학·사슴(또는 대나무,구름) 등을 표현했다. 이 십장생은 이미 고구려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와 조선에서는 시문, 그림, 공예품의 장식 등으로 쓰였고 궁중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애용하는 소재였다.

한편 이러한 길상을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자와 문양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 길상문(吉祥文) 또는 길상무늬라고도 한다. 모란문, 초화문, 당초문, 연화문 등의 꽃문양과 불교적 주제를 사용하는 팔보문 등이 도자기와 각종 공예품, 인장, 건축에 새기는 문양들이다.

'칠보문(七寶文)'은 도교에서 파생된 문양으로 복을 받는 다복, 장수하는 다수, 자식을 많이 낳는 다남의 사상을 담았다. 주로 고리 모양 네 개로 원형을 만들고 꽃무늬와 구슬 등을 장식했다.

태극기 가운데 있는 태극(太極) 문양과 팔괘도 길상에 속한다. 태극은 우주 만물의 생성과 근원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성리학에서 나타났다. 팔괘(八卦)는 하늘, 땅, 바람, 물 등 삼라만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 둘은 원래는 점술에서 쓰였으나, 차츰 쓰는 범위가 넓어져 평등, 축복 등 길상의 의미로도 사용됐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혼란을 겪기 시작한 조선 후기에는 길상이 더욱 유행하게 된다. 조선 후기의 민화 그림도 대부분 길상적 소재를 담는다. 왕실에서는 그림과 건축, 공예에서 단청, 금박, 입사, 조각 등 고급 기법을 이용해 이러한 길상의 소재를 더 화려하게 표현했다.

 

십장생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7호) / 문화재청
십장생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7호) / 문화재청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국보 제95호) / 문화재청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국보 제95호) / 문화재청

한국인이 사용한 전통 색상, '오방색'

파랑·빨강·노랑·흰색·검은색 이 다섯 가지 색을 '오방색'이라고 한다. 오방색은 예로부터 즐겨 사용된 색깔이다. 복주머니나 한복, 보자기에도 오방색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즐겨먹는 오곡밥이나 비빔밥도 오방색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색깔은 선조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오방색은 음양오행 중 오행을 상징한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세상 만물을 음양(일월)과 목(나무), 화(불), 토(흙), 금속(금), 수(물) 이 다섯 가지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각각의 색이 방위를 뜻하기에 방이 함께 붙여졌는데, 청색은 동쪽, 적색은 남쪽, 황색은 중앙, 흰색은 서쪽, 검정은 북쪽을 뜻한다.

나무가 타면 불이 나고, 불이 나면 흙이 생기며, 흙이 뭉쳐 쇠가 되고 쇠에서 물이 생기는데, 이를 상생이라 보았다. 반면 쇠가 나무를 베고 나무는 흙을 먹으며 흙은 물을 가두고, 물은 불을 끄며, 불은 쇠를 녹인다고 하여 이를 상극이라 봤다. 이러한 원리가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방색은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먼저 중앙에 해당하는 노란색은 우주의 중심이며 가장 고귀하여 의복에서는 왕 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다. 청색은 봄에 해당하여 복을 빈다는 의미가 있었고 흰색은 순결을, 검은색을 지혜를 상징했고 빨간색은 악귀를 쫓고 정열과 생성을 상징했다.
 

오방색 옷을 입힌 원앙 조각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오방색 옷을 입힌 원앙 조각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혼례에서 신부에게 연지 곤지를 바르는 것은 빨간색이 악귀를 몰아내는 색이었기에 해온 풍습이었다. 돌잔치에서 아이에게 색동 저고리를 입히는 것은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오곡밥과 비빔밥에 쓰이는 오방색 식재료는 각각 파랑(쓴맛), 빨강(쓴맛) 흰색(매운맛), 검은색(짠맛), 노랑(단맛)을 의미하여 각자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오방색은 이처럼 한국인의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서나 독특하고 다양한 상징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상징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 종교 등이 모두 녹아있으며 이를 그림과 문양, 색깔 등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문양은 도교, 불교, 유교, 무속신앙 등 다양한 전통 종교와 철학이 어우러져 나타났고 그 대표적인 의미는 '길상'이 있었다. 다양한 전통 문양들은 제각각 상징과 유래가 다 다르지만 길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본질은 같았다.

예전에는 옛날 물건을 촌스럽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최근에는 뉴트로 열풍을 통해 옛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늘어났다. 우리 옛 전통도 잘 살펴보면 미적으로도 매력이 느껴짐을 알 수 있다. 또한 거기에는 상징과 오랜 역사가 담겨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현대의 디자인에도 이러한 우리 옛 문양이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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