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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은 역시 무쇠 가마솥! 전기압력밥솥도 무쇠솥의 지혜가 담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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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은 역시 무쇠 가마솥! 전기압력밥솥도 무쇠솥의 지혜가 담겼다고?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02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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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솥에서 갓 지은 밥 / 픽사베이
무쇠솥에서 갓 지은 쌀밥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전기밥솥이 생기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밥을 해먹었을까? 우리에게 익숙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뒤쪽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큼직한 가마솥에서 갓 지은 새하얀 쌀밥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에도 이 가마솥 밥이 맛있다고 해서 찾는 사람이 많다.

가마솥에서 만든 밥맛의 비결은?

왜 가마솥에서 만든 솥이 밥맛이 좋은 걸까? 가마솥을 만드는 재료는 무쇠이다. 이 무쇠솥은 특히 뚜껑이 무거워 전체 솥 무게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무거운 뚜껑을 굳게 닫고 불로 가열하면 내부의 공기 및 물이 증발해 생긴 수증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덕분에 온도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내부 압력이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압력이 높아지면 물의 끓는점도 올라간다. 끓는점이 올라가면 낮은 온도에도 밥이 잘 익게 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높은 산에서 밥을 지으면 쌀이 잘 안 익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는 주변 압력(대기압)이 1기압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쇠솥은 물이 섭씨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게 할 수 있다. 대기압 1기압 이상의 압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쌀의 전분이 높은 온도에서 물과 함께 가열될수록 포도당으로 빠르게 분해되어 단맛이 더 강해진다. 또한 무쇠솥은 바닥이 둥글고 불이 닿는 부분은 두께가 두껍고, 가장자리는 얇다. 이러한 구조는 열이 솥 내부에 골고루 전해질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밥맛이 좋게 되는 것이다. 또한 철로 만든 솥을 사용했기에 다른 밥보다 철분 함량이 7배 이상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과학기술사 연구실에서는 2004년 솥과 밥맛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400명을 무작위로 선별하여 다양한 솥에 넣은 밥맛을 평가하게 했는데 무쇠솥밥이 돌솥, 압력솥, 전기밥솥, 냄비 솥밥 등을 제치고 1위로 꼽혔다고 한다.
 

한국 부엌의 가마솥 / 위키피디아
한국 부엌의 가마솥 / 위키피디아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생활을 완성시킨 가마솥

가마솥은 무겁긴 했지만 부엌에서 난방과 취사를 겸할 수 있는 화덕 위에 고정시켜 놓았고 옮기는 일이 많지 않았다. 몸체에는 네 개의 귀가 있어 부뚜막에 걸쳐 놓으면서 사용하기가 편했다. 한편 뚜껑은 여닫기 편하게 가운데에 꼭지가 달려 있다. 이러한 솥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솥은 고조선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초기에는 토기 혹은 돌, 청동, 구리로 만들었다. 초기의 솥은 왕이 종교의식 및 상징으로 사용했던 역할이 더 강했다. 이후에 점차 삼국시대부터 쇠로 만든 솥이 쓰이게 된다. 고려 시대 중기에는 일반 가정에까지 이 무쇠솥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솥이 보급화되기 전에는 대부분 시루에 곡물을 넣고 떡을 찌거나, 죽을 해 먹었다. 하지만 무쇠솥 덕분에 평민들도 쌀밥을 많이 먹게 됐다. 또한 무쇠가 한번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았기에 국물 요리를 추가로 만드는 데에도 용이했다. 밥과 국이 한국인의 주식이 된 것은 무쇠솥 등장 덕분에 가능했다.

또한 가마솥에서 밥을 하면 바닥에 누룽지가 남았다. 이 누룽지는 긁어 모아 따로 간식으로 먹기도 했고, 혹은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 먹었다. 누룽지와 숭늉은 녹말이 분해되면서 소화를 촉진하는 성분인 덱스트린이라는 물질이 생겨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식후에 자연스럽게 숭늉을 마셨다.

솥은 당시 한국인의 생활 문화에 알맞게 만들어졌다. 당시 한국 사회는 대가족 위주였으므로 밥을 많이 만들 수 있게 솥도 크게 만들었다. '한솥밥을 먹는다'라는 말도 마치 함께 살면서 부엌에 있는 같은 솥의 밥을 먹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한 식구가 되었다는 의미를 솥밥에 빗대어서 쓴 것이다.
 

EBS 직업의 세계 일인자에 소개된 주물장 김종훈 / 유튜브 캡처
EBS 직업의 세계 일인자에 소개된 주물장 김종훈 / 유튜브 캡처

무쇠솥을 만드는 장인 주물장

그렇다면 무쇠솥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었을까? 무쇠솥을 만드는 장인은 주물장(鑄物匠)이라고 한다. 주물은 원래 금속을 녹인 다음에 형틀에 넣고 다시 응고시켜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방법을 말하며, 주조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이 가마솥을 만들었다.

현재의 주물장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유자는 김종훈 장인이다. 김종훈 장인은 안성주물을 운영하며 4대째 대를 이어가며 무쇠솥을 만든다. 가문은 1910년 조부 김대선이 처음 시작했고 1924년 아버지 김순성이 처음 공장을 설립하면서 안성주물이 시작됐다.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백년가업인 셈이다. 또한 현재 아들 김성태 씨가 가업을 전수받고 있다.

장인의 가마솥 만드는 법은 오직 전통 방식 그대로이다. 쇠는 탄소 함유량이 1.7% 이상 되는 선철을 사용하고 연료는 석탄을 가공해 만든 고체연료인 코크스를 쓴다. 1850도 이상으로 펄펄 끓는 쇳물을 형틀에 붓고, 쇳물이 굳으면 다시 분리시키는데, 흑연 가루를 발라 식힌다.

작업은 10단계 이상의 수작업을 거친다. 무쇠솥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여러 명이서 함께 작업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거운 쇠와 펄펄 끓는 쇳물을 다루기 때문에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장인은 그럼에도 묵묵히 가업을 이어가며 즐겁게 솥을 만들고 있다.
 

김종훈 장인이 만든 경복궁 소주방의 솥 복원 / 문화재청
김종훈 장인이 만든 경복궁 소주방의 솥 복원 / 문화재청

현대에도 우리의 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무쇠솥의 지혜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한국인의 생활환경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주거환경이 바뀌고 대가족이 사라졌으며 일상도 바빠졌다. 그리하여 작고 가벼우며 편리한 압력밥솥과 전기밥솥이 가마솥을 대체했다. 그러나 초기의 압력밥솥은 밥맛이 그리 좋지 않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후에는 무쇠솥의 과학적 원리를 참고한 전기압력밥솥이 등장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전기압력밥솥은 무쇠솥처럼 뚜껑을 무겁게 할 수는 없으나, 손잡이로 고정시키는 톱니 바퀴 모양의 장치 및 고무로 된 링을 붙여 공기와 수증기의 배출을 막았다. 그리고 증기배출구와 압력조절장치를 통해 일정하게 압력을 유지하게 했다. 압력밥솥의 압력추에 치익 소리가 나는 것이 이것이다.

또한 가마솥과 비슷하게 바닥을 만들고 압력밥솥을 만드는 소재인 스테인리스강보다 열전도율이 좋은 구리 코일을 바닥과 측면에 감았다. 덕분에 코일에 흐른 전류가 전체면을 가열시켜 각층의 쌀이 골고루 빠르게 익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전자유도가열' 또는 '통가열식'이라고도 한다. 옛 선조의 지혜가 현대 과학에도 적용된 것이다.

무쇠솥과 무쇠솥으로 인해 생겨난 국과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 그리고 누룽지, 숭늉 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였다. 물론 한국인의 생활 그 자체였던 무쇠솥 사용은 현대에 들어 급격히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날 사용하는 전기압력밥솥도 이 무쇠솥의 특징을 계승했다.

무쇠솥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천 년을 이어온 무쇠솥의 지혜가 있었기에 지금도 우리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압력밥솥도 직접 지은 쌀밥의 맛을 완전히 따라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따라 무쇠솥으로 지은 따근따끈한 쌀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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