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07-10 14:10 (금)
그냥 그릇보다 돌솥에 먹는 '돌솥밥'이 맛있다, 돌솥과 곱돌 이야기
상태바
그냥 그릇보다 돌솥에 먹는 '돌솥밥'이 맛있다, 돌솥과 곱돌 이야기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6.25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솥을 만드는 곱돌, 음식을 골고루 익히고 풍미를 높혀져
현대 산업의 다양한 분야와 예술 조각에도 애용
돌솥밥 / 해외문화홍보원
돌솥밥 / 해외문화홍보원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는 '돌솥'

밥과 다양한 나물, 쇠고기, 달걀, 고추장을 한데 얹어 비벼 먹는 비빔밥, 여러 가지 재료의 풍미와 고소함은 비빔밥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비빔밥을 그냥 그릇에 먹으면 뭔가 심심하고 미지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돌솥에 먹어야 제대로 된 비빔밥이다.

뜨겁게 달궈진 돌솥에 나온 비빔밥은 밥을 따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고, 맛도 더욱 고소하다. 돌솥 밑바닥에 생긴 누룽지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것도 돌솥비빔밥만의 매력이다. 사람들은 뜨거운 밥도 차가운 성질의 나물과 만나면 자꾸 미지근해져 맛이 없는 것을 보고 일반 그릇대신 뜨겁게 달군 돌솥을 사용하게 됐다.

돌솥 요리에 비빔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 향토음식인 '영양돌솥밥'도 유명하다. 돌솥에 안친 쌀과 밤, 은행, 잣, 버섯, 채소 등 각종 재료를 얹고 즉석에서 지어낸 밥이다. 갓 지어 윤기가 흐르고 신선하다. 밥은 따로 퍼내먹고 돌솥에는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 수도 있다.

영양돌솥밥은 궁중에서도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만든 밥이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가 먹는 수라상에도 올랐을 정도이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일반 돌로 만든 솥이 늘어나 많은 사람이 맛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더 귀한 천연석인 곱돌로 만든 곱돌솥만을 사용했다.

1924년 한국 음식을 총정리한 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저자 이용기는 "밥을 짓는 그릇은 곱돌솥이 으뜸이고, 오지탕관(질그릇에 잿물을 발라 구운 뚝배기)이 그다음이며, 무쇠솥이 셋째요, 통노구(구리로 만든 솥)가 하등이다"라고 언급했다. 1809년 발간된 '규합총서'에서도 밥과 죽은 돌솥이 으뜸이라고 나온다.

 

활석과 활석으로 만드는 화장품 / 위키피디아
활석과 활석으로 만드는 화장품 / 위키피디아

기름을 바른듯한 윤기, 매끈한 촉감을 가진 곱돌

곱돌의 '곱'은 기름의 순우리말인데, 기름을 바른듯한 윤기를 띠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백색과 담갈색의 색깔, 매끈한 촉감이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페인트, 약재, 타일, 도자기, 벽돌, 조각, 농약 등 다양한 산업용품의 재료로 사용되지만, 특히 열전도율과 보온성이 높아 예로부터 식기의 안성맞춤 원료였다. 곱돌도 종류가 있는데, 활석(滑石)과 납석(蠟石)으로 나눈다.

활석은 경도 1~2도의 무르고 미끈거리며 하얀 돌이다.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돌로 예전에는 학교의 마룻바닥에도 사용해서 나이가 있는 세대는 흔하게 보았을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이뇨작용을 한다고 언급되어 예로부터 한약재를 만들었다. 또한 들러붙지 않는 성질 덕분에 파우더 등 화장품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납석은 경도 2~3도의 돌인데, 가열을 하면 경도가 8 이상으로 더 올라간다. 엽납석, 카올린, 석영, 견운모 등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되고 색도 백색, 적색, 녹색, 황색 등 다양하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하얀 흙인 고령토(카올린)도 납석 종류가 풍화되어 생긴 흙이다.

활석과 납석은 구성 성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물론 활석은 내열성과 내화도가 좋아 내화 산업에 좀 더 많이 쓰이고 납석은 열전도와 내열성, 내식성 등이 강해 벽돌, 주물, 절연체 등에 사용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

 

곱돌냄비 / 국립민속박물관
곱돌냄비 / 국립민속박물관

'장수곱돌', 돌솥을 만드는 데에 가장 뛰어난 특산품

그런데 납석, 활석보다 돌솥을 만드는 데에 더 뛰어난 종류가 있다. 바로 전북 장수군에서 나는 특산품, '장수곱돌'이다. 장수곱돌에는 각섬석(角閃石) 성분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경도는 5 이상으로 단단하다. 그리고 활석, 녹니석 등도 조금씩 함유되어 있다.

장수 곱돌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숙종 시절 금부도사였던 최재민은 장수에 귀양을 갔다. 최재민은 산짐승을 잡아먹으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어 느날 고기를 익힐 방법을 고민하다가 주변에 넓적한 돌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봤는데, 그 맛이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막힌 맛이었다. 최재민은 이 돌들을 진상했고, 이를 기뻐한 숙종이 최재민을 사면했다고 한다.

장수곱돌로 만든 솥인 곱돌솥은 열을 받으면 미네랄과 원적외선을 대량으로 방출하는데, 이들 성분이 재료의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맛은 살려준다. 또한 음식에 열을 골고루 전달해 속까지 익혀준다. 아울러 열을 가해도 금이 가지 않고 잘 버티며, 오히려 더욱 단단해져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돌솥비빔밥 / 위키피디아
돌솥비빔밥 / 위키피디아

그래서 밥 종류뿐만 아니라 불고기, 삼계탕, 찌개 등 다른 다양한 요리도 돌솥과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 혹은 처음 장수곱돌을 발견한 최재민처럼 돌판으로 만들어서 고기를 구워도 좋다. 곱돌은 습기를 머금고 있으므로, 고기가 판에 쉽게 들러붙지 않고, 부드럽게 구워진다.

돌솥을 만드는 돌은 세 돌이 모두 쓰이지만, 그중에서도 이 장수곱돌이 으뜸이다. 이들 세 돌은 성분이 조금씩 다른 돌이지만 곱돌로 칭해진다. 예전 사람들이 그런 것을 알리는 없었을 것이고 매끈거리고 윤기가 나는 돌은 전부 곱돌로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사실 지금도 그 용어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문화재청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문화재청

곱돌을 조각해서 다양한 생활용품과 예술작품을 만든다

곱돌은 고지대 계곡 등에서 채취된다. 광산에서 돌에 구멍을 내는 천공작업을 하고 화약을 넣어 발파시킨 다음에 원석들을 채취한다. 원석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가공을 거쳐야 하는데, 특히 장수 지역 곱돌이 불순물이 가장 적다. 불순물이 어느 정도 제거됐으면 선반, 기계톱과 석공용칼, 절삭기 등을 이용한 수작업으로 자르기, 다듬기, 갈기 등의 7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곱돌로 돌솥은 물론 돌구이판, 뚝배기, 항아리, 주전자, 그릇 등 다양한 식기와 도장, 벼루 등 각종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곱돌을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조각 예술품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했다. 백제의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제329호)'는 6세기에 만든 것으로 곱돌을 조각해 4각형의 높은 대좌에 앉은 보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통일신라 시대에는 이러한 곱돌 조각이 성행했다. 신라의 중심이었던 경주 월성과 황룡사지 등지에서도 곱돌 조각, 생활용품이 자주 출토된다. 이들 유물은 귀족 이상 계층의 애용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돌솥 요리가 왕의 수라상에 올랐으며,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제233-2호)'는 거무스름한 납석으로 만든 항아리로, 연꽃 등 문양과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이 새겨졌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제233-2호)'는 거무스름한 납석으로 만든 항아리로, 연꽃 문양과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이 새겨졌다 / 문화재청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제233-2호)'는 거무스름한 납석으로 만든 항아리로, 연꽃 등 문양과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이 새겨졌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제106호)'는 4각의 긴 곱돌에 테두리를 새기고 그 안에 아미타삼존상을 조각했다 / 문화재청

곱돌을 제외하고 선조들이 귀하게 사용한 돌이라면 옥(玉)이 있다. 그러나 옥 소재는 너무 단단하여 예전에는 가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곱돌은 아름다우면서 훨씬 다루기 쉬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생활 분야에 쓰였고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기도 했다. 한국인의 삶에 훨씬 친밀한 돌이었던 것이다.

또한 곱돌은 현대 산업의 여러 부분에 중요하게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단연 돌솥 요리이다. 돌솥비빔밥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식 요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돌솥의 이 훌륭한 기능을 알아본 선조의 지혜가 현대 우리 후손들은 물론 세계에도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돌솥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