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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①] 피렌체 양치기 소년이었던 지오토, 서양 회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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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와 조각 ①] 피렌체 양치기 소년이었던 지오토, 서양 회화의 시작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6.24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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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필수요소인 거리와 공간, 배경을 처음 창시한 화가
사실주의를 통한 회화의 독립으로 르네상스의 문을 열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인문 중심의 문예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유럽의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으로서, 그동안 중세 시대를 지배해왔던 절대적인 기독교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시야를 옮겨 나갔던 시대였다. 이 시대 그림을 보면 종교와 왕의 절대적 권위 및 장엄한 상징 등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의 고딕 회화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 학계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엄격한 구분에 반대하고 있다. 일단 중세를 대표하는 고딕 양식 역시 르네상스 이후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중세가 무조건 종교에 함몰되고 경직된 그런 암흑의 시대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세라고 무조건 고전 문화를 배척한 것도 아니고, 르네상스라고 기독교에서 자유로웠던 것도 아니다.

중세 미술의 대표적 특징을 들자면, 뾰족하고 치솟은 첨탑 등 고딕 건축, 다양한 색유리로 형상을 표현하고 환하게 내부를 밝히는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이들 양식의 수요는 줄어들었다. 특히 이탈리아인들은 로마 시대를 참고하여 벽에 회반죽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화 등을 많이 그렸다.

또한 그림의 주제에서도 기존 절대불변의 신적 존재, 경직된 성직자 대신 좀 더 실제와 같은 인물의 묘사, 신화와 역사적 주제에 대한 집중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직전, 새롭게 시작될 시대의 막을 열었던 선구적인 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앞에 세워진 지오토 동상 / 위키피디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앞에 세워진 지오토 동상 / 위키피디아
지오토가 그린 단테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지오토가 그린 단테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회화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던 선구자인 '지오토 디 본도네'

그 인물은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이다. 지오토는 우리나라에서는 발음에 따라 '조토'라고도 부른다. 지오토는 르네상스 이후에도 오랫동안 '화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고, 로마 이후 처음으로 가장 위대한 명성을 떨친 예술가라고 한다. 이러한 평가는 웬만큼 위대한 인물도 받기 힘들 것이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책에 따르면 당시 피렌체 최고의 화가 치마부에(Cimabue, 1240~1302)가 피렌체 인근의 시골 마을 베스피냐노에 갔다가 열 살 정도되는 한 양치기 소년을 보았다고 한다. 소년은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치마부에는 한눈에 소년이 굉장한 재능이 있음을 알아챘고, 제자로 삼아 피렌체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 소년이 바로 지오토였다.

바사리가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교황이 지오토의 명성을 듣고 재능을 증명해 보이라 하자, 마치 컴퍼스로 그린 것 같은 붉은 원을 그려 모두가 감탄했다고 했다. 또 치마부에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지오토가 스승의 그림에 파리를 그려 넣었는데, 치마부에가 진짜 파리가 앉은 줄 알고 붓으로 쫓으려 했다고 한다.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Durante Alighieri, 1265~1321)는 신곡 연옥 편에서 조토의 명성이 이제는 스승 치마부에를 가렸다고 얘기했다. 단테는 지오토와 2살 밖에 차이 나지 않은 절친한 친구였다. 지오토는 단테의 초상화를 그려주었으며, 단테는 지오토를 화가 중의 화가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지오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것이 많다. 사실 출생연도도 추정에 불과하다. 또한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벽화 중 '성 프란체스코전'의 28번째 그림이 그의 가장 초창기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정말 지오토 작품이 맞느냐에 대해서도 계속 논란이 벌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지오토가 남긴 확실한 업적으로만 평가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치마부에 예수상(좌, 1287), 지오토 예수상(우, 1310~1317 추정) / 위키피디아
치마부에 예수상(좌, 1287), 지오토 예수상(우, 1310~1317 추정) / 위키피디아

지오토가 남긴 작품들에 대해

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은 각각 치마부에와 지오토가 그린 것이다. 치마부에의 그림은 선을 중심으로 그려 다소 경직되었고 평면적이며 중세 특유의 분위기가 보인다. 하지만 지오토의 그림은 스승 치마부에가 표현하지 못한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했다. 새로운 양식의 시작인 것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파두아 지역,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1305년 그려진 벽화는 서양미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걸작으로 꼽힌다. 이 예배당은 원래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있었던 자리이며, 상인인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집안의 예배를 위해 지었다. 그리고 지오토를 초청하여 벽화 작업을 맡겼다.

예배당 내부에는 제단 안쪽을 제외한 모든 벽과 천장에 지오토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그림은 전체 37개 장면으로 성모 마리아 및 그리스도의 일대기로 구성했다. 지오토는 약 40명의 조수와 함께 625일을 이 예배당 벽화 완성에 썼다. 세밀하고 생생한 인물의 묘사와 입체적 표현에서 나오는 이들 벽화는 서양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오순절(pentecost) / 위키피디아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오순절(pentecost) / 위키피디아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가장 정수로 손꼽히는 애도(Lamentation) / 위키피디아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 중 가장 정수로 손꼽히는 애도(Lamentation) / 위키피디아

지오토가 프레스코 벽화에 사용한 방법은 석회 반죽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부온 프레스코(buon fresco)인데, 이전까지는 마른 벽에 안료로 그리는 세코 프레스코(secco fresco)를 사용했다. 부온 프레스코는 훨씬 내구성이 좋고 색이 아름다웠지만, 한번 마르면 수정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오토는 놀라운 손재주로 이 부온 프레스코를 처음으로 적극 사용했다. 그리고 이 기법이 이후부터 르네상스를 선도하게 된다.

1310년 제작된 '장엄한 성모' 그림은 온니산티 성당의 대형 제단화이다. 계란과 안료를 섞는 템페라 기법으로 목판에 그렸고, 금박을 함께 처리했다. 성모의 모습과 옷 주름 등이 더 인간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지오토는 이후 건축가로도 활동하며, 1334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종탑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으나, 불행하게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장엄한 성모 / 위키피디아
장엄한 성모 / 위키피디아

서양 회화의 근간을 설정한 지오토의 업적

지오토의 업적은 회화의 흐름을 뒤바꾸었으며, 예술의 변두리로 취급받던 회화를 예술의 주류이자 대표가 되게 만들었다. 혹은 아예 서양 회화의 시작을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서양미술에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특징인 자연을 관찰하여 좀 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처음 시도한 것이 지오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오토는 정면 만이 아닌 측면과 후면도 묘사했다. 이는 그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전에는 왜 옆이나 뒤돌아선 사람을 그리지 않았던 것인가 의아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꼭 얼굴이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오토는 측면과 후면의 묘사로 그림의 더 사실적인 접근을 성공시켰다.

또한 지오토는 사람의 감정과 표정, 역동적 동작을 아주 세심히 묘사했고 자신만의 투시법과 명암법을 통해 평면에 입체와 공간을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회화에 구체적 풍경과 건물도 함께 그려 배경이라는 요소를 최초로 도입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회화를 단순한 상징이나 기록이 아닌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놀라운 업적과 시도를 보니 지오토에 대한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닌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반니 보카치오, 기베르티 등 후대 르네상스 인물 및 존 러스킨과 앙리 마티스, 헨리 무어 등 근현대의 뛰어난 예술가들까지 입을 모아 지오토를 가장 위대한 화가라 손꼽는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물론 서양 회화의 전반적인 길을 제시한 지오토의 업적은 오늘까지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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