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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황실의 공예, 연경팔절 ①] 중국 궁궐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그릇, '경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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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황실의 공예, 연경팔절 ①] 중국 궁궐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그릇, '경태람'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6.2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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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자기와는 달리 구리로 만드는 독특한 수공예 그릇, 영롱한 코발트 색과 문양이 세계인을 감탄시켜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베이징(북경)'은 수천 년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있는 중국 최고의 도시이다. 북경은 춘추전국시대에는 전국 7웅이었던 연나라의 도읍이었으며 원나라 이후에는 계속해서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이어왔다. 그리고 중화 문명 최고의 정수가 담긴 세계문화유산인 자금성, 이화원, 천단공원 등이 전해 내려온다.

베이징의 궁궐에는 '연경팔절(燕京八绝)'이라는 비밀스러운 공예도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다. 연경은 옛 연나라에서 베이징을 부르던 말이다. 연경팔절은 중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예술 걸작이다. 종류는 총 8가지로 경태람, 옥 조각, 상아 조각, 조칠, 금칠 상감, 화사 상감, 궁담, 경수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그 기술이 오랫동안 꾸준히 계승되었고,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제작되어 중국을 대표하는 공예로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바로 '경태람(景泰藍)'이다.
 

에든버러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그릇 / 위키피디아
에든버러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그릇 / 위키피디아

중국 황실의 그릇, 경태람

경태람은 베이징에서 가장 특색 있고 진귀한 수공예 그릇이다. 세계적으로도 그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졌다. 경태람은 명나라 경태제(景泰帝) 때에 푸른 코발트 안료를 사용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그릇에 새겨진 다양하고 복잡한 색깔과 문양 그리고 그 표현의 섬세함과 조형미는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경태람의 정식 명칭은 '동태겹사법랑(銅胎掐絲琺瑯)'이며 법람(琺藍) 또는 법랑기라고도 한다. 이 그릇은 흙으로 빚은 다른 여러 중국 도자기와 달리 구리로 만든다. 그래서 경태람을 만들려면 먼저 구리를 주조해서 기물의 형태를 만든다. 그 다음에는 가느다란 구리선으로 하나하나 문양을 입힌다. 그리고 다시 이 문양에 따라 안료를 채색하는데, 그 안료는 법랑(琺瑯)이라고 한다.

법랑은 유리 재질의 유약을 말한다. 법랑 안료의 색깔은 남·청·녹·적·황·백색이 있는데 경태람에는 특히 푸른 코발트가 많이 쓰였다. 채색을 끝낸 그릇은 800~1000도의 가마에서 세 차례의 재벌구이로 굽는데, 구운 다음에는 연마 과정과 도금을 거쳐 완성한다. 완성된 그릇은 유리 특유의 광택과 아름다운 색감을 내뿜게 된다.
 

18세기 제작된 경태람 홧병 / 위키피디아
18세기 제작된 경태람 꽃병 / 위키피디아

다양한 공예 기술이 축약된 경태람의 기법들

경태람 제작은 미술, 조각, 상감, 유리 제련, 금속 제련 등 당대 중국 사회의 온갖 전문 기술이 축약되어 있는 물건이다. 법랑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영, 장석 등을 갈아 만든 유약에 탄산나트륨과 붕사 그리고 산화티타늄, 불화물 등의 유화제, 금속산화물 발색제를 첨가한다.

가장 기본적인 경태람 기법은 가는 구리 선을 접합시키는 '겹사법랑'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아주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내전법랑' 기법은 그릇 표면에 도안대로 윤곽선을 그리고 끌로 파낸다. 그리고 법랑 안료로 메우고 굽는다. 그다음 매끄럽게 연마하면서 완성시킨다.

'화법랑'은 법랑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초벌로 한 번 굽는다. 그리고 표면에 붓으로 인물과 풍경, 글을 섬세하게 그리고 다시 한번 재벌로 구워 완성한다. 이 기법은 유럽에서 청나라 시대로 전해진 것인데,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방법이었고, 강희제와 옹정제가 특히 이 회법랑 작품을 좋아했다.

한편 일본에도 중국의 경태람이 전해졌고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경태람은 '칠보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근대 이전에는 다른 도자기와 함께 크게 성행했다. 칠보소는 물론 중국 것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아닌 일본만의 독특한 문양과 표현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제작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주전자 / 위키피디아
주전자 / 위키피디아

청나라 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진 경태람, 세계인을 감탄시키다

경태람은 로마제국의 그릇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며, 당나라에서는 유리질을 녹여 장식하는 칠보(七寶) 기술이 발전하여 경태람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태람 기술은 14세기 원나라 시대에 중동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이 기법을 새로운 중국만의 공예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명나라 말기에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경태람 제작이 다소 시들해졌으나 청나라에서 다시 부활하였다. 청나라에서는 궁궐에 '법랑작'이라는 전문 공방도 세워졌다. 공방에서는 경태람 기법으로 그릇 제작뿐만 아니라 궁궐의 건축 장식과 온갖 상자, 불상, 탑, 향로 등을 만들었다.

경태람은 1904년에는 미국 시카고세계박람회에서, 1915년에는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으로서 출품되었다. 출품된 작품들은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영롱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세계인을 감탄시켰고, 두 박람회에서 모두 1등 상을 거머쥐었다.

경태람은 약 108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했을 정도로 제작 기술이 복잡했으며, 배우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오랫동안 왕실에서만 전승된 신비로운 공예였다. 청나라 멸망 이후에 중국 대륙은 군벌 난립, 국공 내전, 중일전쟁, 문화대혁명 등 오랜 격변기에 휘말렸으며, 경태람도 명맥이 끊길 위험에 처해졌다.
 

중국 경태람 판매 가게 / 위키피디아
중국 경태람 판매 가게 / 위키피디아

중국인의 자부심이 된 경태람

1966년에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수많은 전통문화가 말살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후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다시 전통 공예를 보존·계승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 세계인을 감탄시켰던 경태람을 다시 부활시킬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게 되면서, 흩어진 장인들을 모으고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복원을 시도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바로 '베이징시 법랑창유한책임회사'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꾸준히 경태람을 생산하여 중국 문화의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 법랑창 회사는 베이징에 '경태람 예술 전시 박물관'도 개관하였는데, 박물관에서 다양한 제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생산 판매도 맡고 있다.

현재 중국 사람들은 경태람에 굉장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도 법랑창 판매점과 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경태람은 수천만 원 이상의 고가의 물건도 있지만 서민들도 구입할 수 있는 싼 가격의 물건들도 만들고 있다.

또한 경태람은 정상회담 등 외국 지도자와의 접견에서 선물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시진핑 국가 주석이 경태람을 좋아하여 여러 차례 외국 정상에게 경태람을 선물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수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경태람을 선물 받았다.

오랜 세월을 꾸준히 이어오며 왕실에서의 비밀스러운 공예로 숨겨졌으나,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세계로 펼쳐져 나가고 있는 경태람, 직접 중국으로 가서 경태람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확인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대부분이 경태람에 대한 중국인의 애정과 자부심을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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