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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 '소울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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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 '소울푸드'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6.18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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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아메리카 대륙의 발전에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메리카 대륙을 일구어나간 수많은 흑인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미국이 지금 같은 초강대국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아메리카 흑인들의 삶은 핍박받고 착취당해온 역사였다. 노예였던 만큼 흑인들의 생활은 백인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식문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인들이 호화로운 식사를 했던 것과 달리 흑인들은 먹고 남은 변변치 못한 식재료를 궁여지책으로 요리해 먹었다. 이렇게 탄생한 흑인들의 음식을 '소울푸드(soul food)'라고 한다.

우리가 즐겨먹는 치킨 중에 가장 기본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이나 야외에서 파티할 때 통으로 구워 먹는 '바비큐'도 원래 미국 남부 흑인들의 눈물과 영혼이 서린 소울푸드였다고 한다. 이제는 대중들이 맛있게 즐기고 있는 음식의 유래가 흑인 노예들의 음식이라니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프라이드 치킨 / 픽사베이
프라이드 치킨 / 픽사베이

치맥의 기본인 프라이드 치킨, 원래는 흑인의 음식

닭을 튀겨먹는 방법은 물론 예전에도, 다른 지역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18세기 당시 미국에서 닭고기를 요리해먹는 방법은 오븐에 구워 먹는 로스트 치킨이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살이 많은 다리, 몸통은 먹고 날개와 목, 꼬리 등은 버렸다. 흑인들은 이 버린 부위를 요리할 생각을 했으나, 오븐이 따로 없었기에 기름에 튀기는 방법을 생각했다.

프라이드 치킨(fried chicken)은 그렇게 탄생했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겼기에 뼈째로도 먹을 수 있었고 살코기가 적어도 로스트 치킨보다 열량이 높아 고된 노동으로 지친 흑인들에게 훌륭한 칼로리 공급원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는 닭고기를 많이 먹어왔고 기름 등도 많이 남아돌아 흑인 노예들도 프라이드 치킨을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치킨을 만드는 기름은 두 가지인데, 목화에서 짜낸 기름인 면실유, 돼지비계를 녹인 기름인 라드였다. 목화는 미국 남부의 주요 산업이었고, 양돈업도 발달해 돼지 역시 많았기에 이들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예 끓는 기름이 가득 담긴 통에 반죽을 입힌 닭을 담가 튀기는 딥프라잉(deep frying)도 가능했다. 또 흑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파프리카, 파슬리, 고춧가루 등 아프리카 향신료를 사용하기도 하고, 레몬즙을 곁들이거나 버터밀크, 소금물 등에 재워둔 다음에 조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후라이드 치킨은 20세기까지도 미국 하층 흑인이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백인 하층민도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부 켄터키 주에 사는 커넬 샌더스(1890~1980)라는 사람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이라는 유명 브랜드를 창업하면서 미국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는 기존에 꼬챙이에 통으로 닭을 꽂고 전기로 굽는 '통닭'이 유명했다. 우리 아버지들이 퇴근길에 사 오시곤 했던 추억에 남는 요리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프라이드 치킨이 들어와 다양한 프랜차이즈가 생겨났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통닭 대신 후라이드 치킨이 국민 음식으로 대체되었다.
 

바비큐 / 픽사베이
바비큐 / 픽사베이

통구이 바비큐, 별다른 조리시설이 없어 밖에서 구워먹은 요리

바비큐(barbecue)는 고기 재료들을 꼬챙이에 꽂거나, 석쇠를 이용해 불에 굽는 요리이다. 원래 바비큐 요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래됐다. 브라질의 슈하스코, 멕시코의 바르바꾸아 등이 바비큐와 비슷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요리이다. 기본적 조리 과정은 비슷하지만 고기나 야채 재료, 향신료, 굽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미국 남부 흑인들은 백인들이 먹다 남긴 돼지, 닭, 칠면조, 소고기 등을 화덕이나 장작불 등을 따로 만들어 오순도순 모여 구워 먹었다. 지금은 야외에서 신나게 바베큐 파티를 하지만, 당시 흑인들은 따로 주방이나 조리시설이 없었기에 이렇게 밖에서 궁여지책으로 먹었던 것이다.

굽는 방법은 크게 직화로 단시간에 굽는 그릴링(grilling)과 직접 불이 닿지 않게 연기를 쐬어 훈제로 조리하는 바비큐잉(barbecuing) 두 가지가 있다. 먹는 방법은 그대로 뜯어먹기도 하고, 잘게 잘라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등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도 있다.

바비큐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양념을 재워두고 소스를 바르면서 구웠다. 소스는 토마토, 고추로 만들었다. 텍사스 주에서는 소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1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훈제로 오랫동안 구워 육즙이 살아있다. 또 지역마다 쓰는 장작이 달랐고 장작마다 맛도 다르다. 남부에서는 참나무와 숯을 사용해 고기 본연의 풍미가 있었고, 서부는 메스키트와 히코리 나무를 사용했는데, 강한 향이 특징이다.

서부 개척시대에 바비큐는 간편한 조리 방법 덕분에 널리 미국에 퍼졌다. 바비큐는 흑인의 소울푸드이면서도 거친 미국 남성의 마초적인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요리와 달리 바비큐는 남자가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물론 미국 가정의 대부분이 바비큐 조리 기구가 갖춰져 있을 정도이다.
 

치틀린즈 / 플리커, Ron Dollete
치틀린즈 / 플리커, Ron Dollete
검보 / 위키피디아
검보 / 위키피디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소울푸드

소나 돼지의 대장, 소장을 요리해 먹는 곱창·막창·대창은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비슷한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흑인들도 백인들이 먹다 남긴 동물의 내장을 요리해먹었는데 이를 치틀린즈(chitlings)라고 한다.

내장은 단백질과 효소가 많아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다. 흑인들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내장에 다양한 양념을 넣어 먹었다. 이처럼 흑인의 소울푸드는 대부분 저질 식재료를 이용했으며, 대신 향신료를 많이 넣어 향신료 맛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치틀린즈는 오늘날에는 다른 요리만큼 미국에서 대중화된 요리가 되지는 못했다.

검보(gumbo)는 오크라 수프라고도 부른다. 여러 가지 고기와 소시지, 야채, 해산물을 오크라라는 아열대 식물을 빻은 가루와 섞고 약한 불에 푹 끓여 먹는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래됐으나, 점차 미국과 유럽에도 퍼졌고 더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종류도 다양해졌다.

옥수수빵(콘브레드)은 미국 남부 흑인의 대표적 가정식이다. 가장 많이 길렀던 옥수수를 갈아서 우유와 계란, 밀가루 등을 섞고 반죽해서 굽는다. 간단한 레시피와 다소 투박하고 거친 맛이 특징이다. 검보 수프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경우도 많다.

잠발라야(jambalaya)는 다른 요리와 달리 동아시아의 주식인 쌀로 만든 보기 드문 요리이다. 카리브 제도에서 유래됐으나,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스페인, 프랑스의 문화가 모두 섞였다. 고기, 후추, 야채, 고추를 볶다가 쌀과 육수를 넣어 끓인다. 볶음밥이기도 하지만 오래 끓이면 잡탕 죽처럼 변하기도 한다.

특히 잠발라야와 검보는 흑인의 소울푸드이면서도 프랑스계 아메리카인의 케이준(cajun) 음식에 속하기도 한다. 영국에 의해 캐나다에서 미국 루이지애나로 강제 이주당한 가난한 프랑스인들이 만든 케이준 요리는 다양한 저급 재료를 한 번에 넣고, 강한 향신료로 맛을 낸다는 점이 흑인 소울푸드와 비슷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잠발라야 / 위키피디아
잠발라야 / 위키피디아

역동성과 다양성이 특징인 소울 푸드와 미국 음식

소울푸드는 본래 미국 남부 흑인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음식을 이르는 단어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흑인 외에도 다양한 집단의 강한 정서와 추억이 담긴 음식을 의미하는 말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가난의 상징이었던 흑인의 소울 푸드가 한국인의 한식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 특히 부대찌개가 그렇다.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을 이것저것 모두 넣어 끓인 것이고, 흑인의 소울푸드 역시 백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이것저것 한데 모아 조리한 것이 많다. 하지만 둘 다 이제는 가난을 넘어 민족의 '영혼'이 담긴 대표 음식이 되었고 당당하게 먹고 있다.

그런데 흑인들의 훌륭한 칼로리 공급원이었던 후라이드 치킨이 이제는 생활이 풍족해진 현대에 고혈압, 비만 등 각종 질병의 주범이 되었다. 반대로 기름을 쫙 뺀 백인들의 로스트 치킨이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는 것을 보면, 정말 역사의 변화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음식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잡탕으로 어우러져 생겼다. 그만큼 조리방법이 간편하면서 뭔가 맛도 거칠고 조촐하며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몇몇 요리는 세계에서 인기를 끌 만큼 혁신적인 시도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미국 음식 문화는 역사는 짧아도 그 역동성과 다양함은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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