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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선박 ③] 수작업으로 우리 배를 만드는 장인, '조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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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선박 ③] 수작업으로 우리 배를 만드는 장인, '조선장'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6.16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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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가와 하천을 누비던 강선(江船), 70년대까지만 해도 자연스런 풍경 속해
산업화로 급격히 사라진 전통 선박 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장에 대해
세곡을 운반하는 배 / 유운홍(1797~1859) 作 , 위키피디아
세곡을 운반하는 배 / 유운홍(1797~1859) 作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한국 고유의 전통 선박인 한선은 고려시대에 처음 기본적인 형태가 정착되었다. 대부분의 배는 조운선으로 이용됐으나, 우수한 군함들도 많았다. 특히 과선과 누전선 등은 중국에서도 인정한 강력한 선박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판옥선과 거북선은 왜군을 무찔러 오늘날까지도 우리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부터 점차 배 만드는 일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는 엔진을 장착한 강력한 이양선을 탄 서양인들이 동양을 침범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선박들은 수백 년 동안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했는데, 이때도 조선 군함은 판옥선이었다. 그렇기에 근대 문명의 산물인 서양 선박을 당해 내기는 힘들었다. 물론 이것은 조선 외의 다른 동양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개혁·개방과 근대화가 이뤄지면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온 기존 선박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직 강가에서 타는 원시적 형태의 나룻배나 거룻배 등만이 이어졌을 뿐이다. 거북선 등 수많은 우리 배가 명맥이 끊어지고, 그 복원이 쉽지 않게 된 것이 바로 이 시대의 급격한 쇠퇴와 혼란 때문이다.
 

배를 제작 중인 장인 / 문화재청
배를 제작 중인 장인 / 문화재청

배 만드는 장인, 무형문화재 조선장

조선장(造船匠)은 전통 선박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현재 남아있는 장인들은 대형 선박보다는 강을 이동하는 강선(江船)을 만든다. 조선장이 만든 물길을 오가는 강선과 곳곳에 세워진 나루터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이전까지도 한강, 낙동강, 섬진강 등 큰 강과 여러 하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선장은 예로부터 강가 주변에서 거처하면서 배를 만들고 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받아왔다. 큰 배는 2~3명이 작은 배는 1~2명이 몇 주에서 한 달 정도 동안 오직 수작업으로 배를 제작한다. 그리고 어로 생활을 하는 마을 주민들도 함께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배는 다른 한선처럼 밑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평저선이었다. 얕은 강가에도 이동이 가능하여, 마치 자가용같이 집 앞에도 바로 눌러앉아 메어다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에 댐이 들어서고 엔진을 장착한 보트, FRP 등의 소재로 만든 선박이 많아지면서 전만 해도 흔했던 전통 선박은 줄어들고 현재는 무형문화재로 전승되고 있다.

조선장은 현재 각 시·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는데,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6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1호',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5호'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0호' 등이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박정옥 조선장이다. 오랫동안 한강을 드나들던 다양한 배를 만들었으나, 1994년에 사망하면서 현재는 안타깝게도 명맥이 단절되었다.
 

복원된 황포돛배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복원된 황포돛배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임진강 황포돛배 / 파주시
임진강 황포돛배 / 파주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조선장들과 황포돛배

경기도 무형문화재 김귀성 보유자는 배를 만들고 사공 일도 했던 집안 출신이다. 부친 김용운 장인에게 기술을 전수받고 현재 팔당댐 밑에 8대째 거주하면서 배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배와 박물관의 복원 모형, 전시물을 만들고 있는데, 안동 하회마을, 부여 궁납지 등에서도 전통배를 복원시켜 전시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부터 강에서 생필품과 곡식을 나르던 배인 '황포돛배'를 복원하여 만들고 있다. 이 황토돛배는 물을 먹지 않는 낙엽송이라는 강한 소나무로 배 형태를 만든다. 황포라는 말은 배의 돛에 소금과 황토물을 들였기에 때문에 붙여졌다. 황토물을 들이면 좀과 부식을 방지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황포돛배는 바닥에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곱장쇠'라는 활같이 생긴 부자재를 설치했다. 이 곱장쇠는 배가 돌에 부딪혀서 충격을 받아도 다시 펴질 수 있게 했다. 또한 양옆에 홈을 파서 가로질러 나무와 나무를 붙이는 '아엽파기', 나무와 나무를 잇는 '동머리잇기' 등의 방법을 사용해 견고한 배를 제작한다.
 

가거도 멸치잡이배 / 문화재청
가거도 멸치잡이배 / 문화재청

만들어진 배는 마지막으로 키를 설치하고 돛을 다는데, 돛을 세울 때는 멍아라는 디딤바닥을 만들고 세웠다. 멍아는 못 없이도 돛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배의 형태를 완성한 후에도 옻칠과 단청 작업 등을 고쳐 방수성과 심미성을 보완시켜 작업을 끝낸다.

부산 무형문화재 김창명 보유자는 증조부부터 4대째 배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가 만드는 대표적인 배는 하단돛배이다. 이 하단돛배는 낙동강에서 물자를 나르거나, 고기를 잡았던 경상도의 전통 선박으로 황포돛배의 한 종류이며 길이는 약 10m에 이른다. 1970년대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하단돛배는 낙동강 일대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배이다.

배를 만드는 일은 아주 섬세하고 정교해야 한다. 조금만 비율과 수치가 달라도, 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에 정확히 지켜야 한다. 장인의 감각과 눈썰미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현재 활동하는 무형문화재 조선장은 거룻배, 나룻배, 야거리배, 놀잇배 등 작은 배도 만들지만 황포돛배 같은 비교적 큰 구조선 단계의 배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1904년 한 나루터에서 찍힌 뱃사공 / 출처미상
1904년 한 나루터에서 찍힌 뱃사공 / 출처미상

우리 바다와 강을 누빈 한선의 복원을 꿈꾸며

우리나라는 신라부터 고려, 조선까지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부러워하는 최고의 배를 만들어왔다. 우리 민족에게는 정말 배를 만드는 데에는 타고난 DNA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에도 한국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선강국이 된 것을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전통 선박 제작 기술은 너무나 급격히 빨리 사라지고 소실되었다. 거북선의 제작 방법과 형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서양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판옥선과 장보고 무역선 등 수많은 우리 한선이 우수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지만 정작 그 원형은 제대로 전해지지도 못하고 있다.

대형 선박들의 복원은 난파된 배를 발견하는 것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국가 주도로 수많은 해안에서 수중탐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니, 좋은 소식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아버지 세대 때만 해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던 우리 강가와 하천의 배들 역시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배가 되었다. 그러나 대형 선박과는 달리 아직 강선 제작 기술은 지금도 꿋꿋이 배를 만드는 조선장들이 이어가고 있다. 

강력한 군함들도 좋지만 어쩌면 우리 일상 속에서 스며들어왔던 이런 배들의 가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나마 기술이 이어져오고 있는 우리 전통 선박도 언제 판옥선이나 거북선처럼 명맥이 끊길지 모를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기술을 계속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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