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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경주에서 발견된 금동 신발, 이름없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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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경주에서 발견된 금동 신발, 이름없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5.28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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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일원 내에 위치한 황남동 120호분 오랜 방치 놔두고 발굴 조사 중,
120-1호분, 120-2호분 추가 확인 및 다양한 유물 발견 성과··· 귀중한 가치 지녀
경주 황남동 120호분 일원 전경 /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호분 일원 전경 /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경주 황남동 120호분의 발굴현장,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파르스름한 금동 유물에 대해 자신있게 설명했다. 1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신발은 지난 10일 발굴현장에서 둥극 곤면을 발견하여 흙을 제거하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조사에서 이처럼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27일에 현장설명회를 가졌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황남동 120호분,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다

황남동 120호분은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에 위치했다. 대릉원에는 5~6세기 신라의 왕과 왕비, 귀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는 곳으로,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발굴조사가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황남동 120호분의 경우에도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되었으나 민가 조성 등으로 훼손되면서 고분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8년 5월부터 120호분의 잔존 유무와 범위 등을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앞으로 진행할 유적 정비사업에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2019년에는 120호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0호분의 북쪽에 위치한 120-1호분과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과 그 주변 유구 분포 현황 (파란색 : 삼국시대, 녹색 : 통일신라시대, 노란색 : 고려~근대)
경주 황남동 120호분과 그 주변 유구 분포 현황 (파란색 : 삼국시대, 녹색 : 통일신라시대, 노란색 : 고려~근대)

발굴조사 결과, 120호분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번 무덤은 흙이 아닌 굵은 모래 형태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긴 모래인 마사토인 것이다. 이는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조사에서 처음으로 나온 사례여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봉분은 마사토를 이용해 북서-남동 26.1m, 북동-남서 23.6m 규모로 축조되었다. 

아울러 120-1호분과 120-2호분은 120호분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조성되었으므로, 120호분보다 후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120-1호분에서는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되었으며, 120-2호분의 매장주체부에서는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출토된 금동 신발 노출 상태 / 문화재청
출토된 금동 신발 노출 상태 / 문화재청

경주에서 43년만에 출토된 금동 신발

특히, 지난 5월 15일에 확인한 120-2호분에 묻힌 피장자 발치에서 금동 신발(飾履) 한 쌍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으며,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이번이 43년만의 일이다.

신발은 표면에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모양의 금동 달개(瓔珞, 영락)가 달려 있다. 지금까지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 지내어 보내는 의례(葬送 儀禮, 장송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피장자의 다리 부분에서는 허리띠 장식에 사용된 은판(銀板)이 발견됐으며, 머리 부분에서는 신발에 달린 것처럼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도 확인되어 주목받는다.  학계에서는 이 달개가 머리에 쓰는 관(冠)이나 관 꾸미개(冠飾, 관식)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또한 부장칸에서는 금동 말안장(鞍橋, 안교)과 금동 말띠꾸미개(雲珠, 운주)를 비롯한 각종 말갖춤(馬具, 마구) 장식, 청동 다리미, 쇠솥, 다양한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금동 신발을 비롯해 귀한 유물이 나왔고 특히 고분의 크기로 볼 때 102호와 120-1호분, 102-2호분은 신라 왕족 또는 최상위의 귀족 가족들로 추정된다.
 

120-2호분 출토 금동 말띠꾸미개 / 문화재청
120-2호분 출토 금동 말띠꾸미개 / 문화재청
120-2호분의 청동 다리미 노출 상태 / 문화재청
120-2호분의 청동 다리미 노출 상태 / 문화재청

계속되는 발굴조사··· 고분의 새 이름 지어질 예정

발굴조사단 관계자는 "앞으로 120-1‧2호분의 조사를 완료하고 아직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120호분의 매장주체부도 본격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120호분은 120-1‧2호분에 비해 봉분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보다 위계가 더 높은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황남동 120호분은 조사 진전 상황을 고려하여 앞으로도 현장 설명회 등을 통해 꾸준히 조사 성과를 공개하겠다"라고 전했다.

또한 발굴조사단과 문화재청 측에서는 그동안 발굴된 유물의 이름이 천마총이나 금관총, 무용총 등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는 점을 고려해,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이 고분도 금동 신발 혹은 추후 발굴된 유물을 따서 새롭게 이름을 결정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과 경주시 측에서는 아직 발굴조사가 초기 단계이지만, 금동 신발 등 출토 유물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5월 27일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하여 5월 27일 현장 설명회는 언론 공개(오전 11시)와 일반인 대상 공개(오후 2시)로 나누어 진행했다. 또한 참석자들은 발열 확인과 손 소독제 사용을 의무화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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