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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새 없는 전통은 도태된다' -목공예 옻칠작가 정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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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새 없는 전통은 도태된다' -목공예 옻칠작가 정환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4.14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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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고척동 산업용품 종합상가 한구석 ‘전통 옻칠 공방’ 간판이 걸려있다. 간판이 없었으면 한참을 헤맸을지도 모른다. 공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무냄새가 한가득이다. 흩어진 톱밥과 빛바랜 작업대, 곳곳에 묻은 옻칠 자국은 작가의 주름진 얼굴만큼 세월을 보여준다.

정환오 작가는 건축을 전공했고,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금은 목공예와 옻칠을 한다. 그는 건축이든 공예이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형태를 새롭게 창작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인테리어로 목재를 많이 다뤘던 그는 나무 세면대가 물이 스며들었을 때, 부식이 되는 것 때문에 고민하다 옻칠을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방수성이 좋아진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본격적으로 옻칠 공부를 시작했다.

작가는 나무를 조각하고, 옻칠을 해서 필기구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플라스틱 필기구를 생각하면, 그의 볼펜은 조금 낯설기도 하다. 나무라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가볍고 그립감도 좋았다. 왜 그는 나무로 볼펜을 만들고 옻을 입혔을까. 이는 ‘쓰임새 없는 전통은 도태되고 만다’는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환오 작가
정환오 작가 / 컬리버

작가님 안녕하세요 우선 작가님에 대한 소개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옻칠과 목공예를 하는 정환오 작가입니다. 원래는 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인테리어 일을 오랫동안 주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목공예와 옻칠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것에 매력을 느껴 현재까지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브랜드명이 '잇다' 인데 '잇다' 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잇다란 자기 생각을 표현해서 현실로 이어감을 뜻합니다. 창작은 작가가 자신의 사고를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품도 역시 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공예라는 매개체로 이어 탄생한 결과물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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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샤프 / 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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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볼펜과 등용문 우드 샤프 / 컬리버

작가님은 문구 그중에서도 샤프나 볼펜을 주로 만들고 있잖아요. 요즘 옻칠 상품의 상당수가 수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문구에 옻칠을 접목하게 되었나요

이미 옻칠하는 사람이 많아요. 더구나 옻칠로 섬세하게 제대로 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30년, 40년을 해야 해요. 뒤늦게 배운 제가 수익을 창출하기에는 그럴 시간이 부족하죠. 그래서 너도나도 하는 그런 방법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했던 겁니다. 생각 끝에 샤프와 볼펜처럼 대중적인 물건에 옻칠을 접목하게 됐습니다.


등용문 우드 샤프에 새겨진 무늬가 독특한데 설명 부탁드려요

이것은 물고기 무늬입니다. 등용문(登龍門) 또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잉어가 황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이야기는 과거 급제와 출세를 상징합니다. 보통 샤프를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기도 하니까, 그 뜻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작업하는 정환오 작가
작업하는 정환오 작가 / 컬리버

해당 작품을 만드는 대략적 과정과 소요시간 및 재료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요

작품은 한 시간에 보통 3~4개 만들어집니다. 우드터닝으로 조각을 하는데, 사각형 나무를 선반에서 깎아서 샤프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용한 나무들은 각자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회화나무는 출세, 참죽나무는 장수, 윌넛나무는 불멸, 소태나무는 희망, 파덕나무는 벽사(나쁜 기운을 막음)의 의미가 있어요.


평상시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기능적인 문제도 중요할 것 같아요

일단 손에 다한증 있는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기존 플라스틱 샤프와 볼펜과 비교하면, 저의 제품은 원목이라 땀이 잘 흡수되어 미끄럽지 않다고 합니다. 그립감도 좋고요. 또한 나무에 맞춤형으로 각인이나 그림을 하기도 좋으니까, 나만의 물건으로 사용할 수 있고, 선물용에도 좋지요.
 

컬리버 제공
컬리버 

이 상품들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어떻게 보완해왔나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물건이 완벽할 수는 없고, 시행착오도 많죠. 저는 일단 많이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기발한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게 결과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일단 100개 정도는 열심히 만들어야, 그중에 제가 만족하는 디자인이 나옵니다.

물건을 만들 때, 제가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허투루 만들 수가 없죠. 하나를 만들더라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계속 이렇게 열심히 만들고 많이 생각하면서 작업하면, 기능과 디자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오랜 습작을 통한 경험과 숙달이 핵심인 거죠.
 

옻칠컵 / 컬리버 제공
옻칠컵 / 컬리버

아직 판매하지 않으시지만 또 개발 중이신 작품이나 연구하고 계신 디자인 새로운 기능 등이 있다면

한복 디자인 샤프, 한옥 지붕을 모티브로 삼아 조각한 나무 옻칠 컵, 부엉이 형태의 작품, 새로운 디자인의 수저 등 다양한 디자인과 제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옻칠 컵을 조금 설명해보자면, 옻칠 컵은 나무에 옻칠을 했기에 깨지지 않고, 살균력이 좋아요. 그런데 옻칠 컵은 이미 많이 만들어지는 소재이죠. 그래서 저는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고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영감에 관하여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얻기도 하고 스치는 찰나에 번뜩 떠오르는 사람도 있어요 작가님은 주로 어디에서 어떻게 창작의 영감을 얻나요

저는 불현듯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입니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메모해두고 활용하죠. 물론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죠.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게, 언제 어디서나 아이디어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작업실 선반 / 컬리버 제공
작업실 선반 / 컬리버

브랜드 잇다로서 또는 공예가 정환오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목표는 없습니다. 그 순간순간 즐거움을 통해 하는 겁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자기가 재밌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이러한 즐거운 과정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결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을 지속하게끔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똑같습니다. 오직 즐거움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까 생각하고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잡념도 줄어들고 좋더라고요. 이러한 즐거움이야말로 꾸준히 창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쓰임새 없는 전통은 도태된다라는 창작관이 굉장히 강렬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전통에 좋은 것이 참 많아요.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면 안 돼요. 시대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도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전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저는 소득을 위해 옻칠 목공예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전통도 소비자가 찾아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전통으로 수익을 내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0% 예술도 아니지만, 무조건 상업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그 전통 기술을 이용해 고민하고, 경쟁하고, 다시 맞춰나가야 발전하는 거죠.
 

작업에 사용하는 나무 / 컬리버 제공
작업에 사용하는 나무 / 컬리버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밥숟가락들 힘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저의 즐거움이자 정신을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니까요. 수익적 부분도 중요하고, 전통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즐겁기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처럼 작은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핸드메이드 공예 작가들을 위한 조언이나 한마디 부탁드려요

수공예를 해서 수익을 창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모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죠. 결국은 자기만의 독특한 아이템이 있어야 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죠. 어느 것이나 다 그렇겠지만, 경쟁 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가 알아줘야 해요. 그게 가장 급한 거죠.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저는 손재주가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계속 노력 중입니다. 핸드메이드와 전통을 위해 힘쓰는 모두를 응원합니다.
 

등용문 샤프 들고 있는 진종오 / 컬리버 제공
등용문 샤프 들고 있는 정환오 / 컬리버

'쓰임새 없는 전통은 도태된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순수미술이 아니다. 대중에게 인정받고 팔려야만 공예품으로서의 의미가 생긴다고 작가는 말한다. 전통 공예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업화의 논리로만 생각할 수는 없으나, 현대의 새로운 쓰임에 맞춰나가야, 전통도 그 자체로의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

분명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현대에도 본받을 것이 많다. 하지만 그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목공예와 옻칠, 전통 디자인이 합쳐진 샤프와 볼펜은 작가의 고민이 담긴 참신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은 즐겁다. 어떤 일을 하든 다른 구구절절한 것들보다 즐거움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전통과 현대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정환오 작가와 같은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 전통 공예도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쓰임새를 얻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 인터뷰는 핸드메이커와 문화 솔루션 기업 컬리버가 함께 기획 취재한 내용으로 스몰컬쳐 매거진 人文:想 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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