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1 11:50 (목)
[세계의 핸드메이드 도시] 세계적인 악기의 도시, 이탈리아 크레모나
상태바
[세계의 핸드메이드 도시] 세계적인 악기의 도시, 이탈리아 크레모나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4.06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트라디바리와 아마티 등 거장을 낳은 도시, 크레모나···
유럽의 중심으로서 악기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장소, 수많은 장인이 모여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있는 크레모나(cremona)는 인구 7만 2천 명의 작은 도시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크기와는 달리 이 도시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서 굉장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크레모나는 로마시대부터 이미 융성했던 곳으로, 수많은 로마의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자치도시로서 번성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다. 현재 크레모나에는 13세기에 건설된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종탑(120m)이 있고, 롬바르디아 양식의 대성당, 산 타고스티노 성당, 산 피에트로 알 포 성당 등 유서깊은 문화재도 전해져오고 있다.
 

종탑이 보이는 크레모나 시내 광장 / 위키피디아, trolvag
종탑이 보이는 크레모나 시내 광장 / 위키피디아, trolvag

크레모나, 악기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다

특히 16세기부터 크레모나는 '음악의 도시'로서 세계적인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최고의 작곡가이자, 오페라의 확립에 기여한 대거장,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또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비올라 등을 만든 스트라다바리, 아마티, 과르네리 등 불후의 악기 가문도 바로 이 크레모나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현대의 악기들은 표준화되어 만들어진다. 이미 일정 부분 적립된 규칙과 표준을 기본적인 틀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준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얼마나 많은 악기가 만들어지고 난립하다가 사라졌을까. 그렇기에 현대 악기는 오랜 세월 속에서 나타난 악기 중에서도 인정받고 살아남은 최선의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살아남은 현악기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이 있다. 이보다 훨씬 많은 다른 악기는 이미 사라져서 쓰이지 않고, 박물관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현대의 현악기를 직접 만들고 정립되었던 최초의 장소가 바로 17세기의 크레모나였으며, 그 주인공은 스트라디바리와 안드레아 아마티 등이었다.

크레모나는 당시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로 중 하나였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했기에 온갖 물자가 이곳에 모였다. 그래서 목재를 비롯한 질 좋은 악기 재료를 얻기가 쉬웠다. 또한 니스(varnish)는 롬바르디아의 것이 가장 품질이 좋았다. 니스는 소나무의 테레빈유와 천연수지로 만드는 도료인데, 악기의 내구성을 강화하고, 방수와 병충해로부터 보호하여 악기의 품질을 좌우한다.

이러한 최적의 환경 덕분에 크레모나에서는 자연스럽게 유럽 곳곳에서 장인들이 모여 악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장인이 만든 악기가 유럽으로 퍼져나가 유럽 음악의 발전을 선도하게 되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으나, 크레모나 악기는 당시 내로라하는 모든 음악가들이 모두 찾는 명품 악기였다.
 

크레모나 광장에 있는 스트라디바리 흉상 / 위키피디아
크레모나 광장에 있는 스트라디바리 흉상 / 위키피디아
크레모나 바이올린 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바이올린 / 위키백과
크레모나 바이올린 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바이올린 / 위키피디아

어디서나 음악과 악기를 만날 수 있는 크레모나 둘러보기

크레모나를 둘러보면, 길거리에서 수많은 음악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이 역시 무색하지 않다.  도시의 중심인 두오모 성당과 종탑은 크레모나를 들리면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한다.

시내 곳곳에는 또한 여러 바이올린 박물관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스트라디바리 박물관이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스트라디바리 흉상과 함께 박물관 내부에는 생전에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과 만드는 과정, 도구, 스케치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크레모나의 국제현악기제작학교는 1938년에 설립하여 오늘날에도 꾸준히 악기 제작 장인을 양성하고 있다. 세계 유수 콩쿠르에 입상한 바 있는 정가왕, 이승진 장인도 이 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크레모나에서 활동하고 있다. 크레모나를 둘러보면 수많은 악기 공방을 찾아볼 수 있다. 현지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이승진 현악기 제작자에 따르면 시에 등록된 개인 공방만 약 150개 이상이라고 한다.

크레모나 장인들은 이탈리아 현악기 제작 협회(Associazione Liutaria Italiana) 등 다양한 협회를 결성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로 힘을 모아 교류하여 현악기의 앞날을 모색하고, 크레모나 악기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세계를 돌며 전시를 개최하여 세계인들에게 널리 크레모나 수제악기를 알리고 있다.

크레모나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이들 악기는 대량생산이 아닌 장인정신을 담은 최고급 수제 악기다. 장인들은 직접 가장 좋은 재료를 선별하여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이며 만든다. 그렇기에 고급 바이올린은 일 년에 10대 이하 밖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다. 정말 비싼 것은 2만 유로에서 4만 유로까지 이르기도 한다.

크레모나의 수제 악기는 하나하나가 높은 가격을 형성한 고수익 제품이지만,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장인의 손기술에 의존해야 하므로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다. 악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ㅇ
모라시 공방에서 지오 바타 모라시와 현악기를 제작하는 이승진 제작자 / 이승진

영혼을 담은 수제 악기와 장인 정신

스트라디바리 역시 악기 하나하나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곤 했다. 악기 완성을 독촉하는 의뢰인에게는 6개월 동안 기다릴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주문을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의 크레모나 장인들 역시 이러한 스트라디바리의 장인 정신을 이어 최고의 악기만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좀 더 저렴한 현악기들을 만들어내면서 상황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크레모나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도 악기산업이 침제되면서 위기를 맞이했었다. 하지만 교육기관을 늘리고,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병행했으며, 1960년대 이후 일어난 바로크 음악 붐을 선도하면서, 다시 한번 현악기 제작을 활성화시켰다.

스트라디바리는 오늘날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에 꼭 유난히 스트라디바리만이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크레모나에는 400년 전부터 스트라디바리 만큼 뛰어난 수많은 악기 제작자들이 활동했던 것이다. 이들 장인들은 바이올린 등 악기에 대해 토의하고, 교류하고, 배우며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면서 최상의 악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중에서 유독 뛰어났던 몇몇 장인만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티 가문과 스트라디바리의 재능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악기 사업에 최적화된 크레모나의 환경과 수많은 무명 장인들의 뒷받침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에 남는 것은 몇몇 천재이지만 천재 혼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악기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제공하는 크레모나와 악기에 영혼을 담고자 하는 제작자의 장인 정신, 그리고 그 악기를 알아주는 예술가들이 꾸준히 이어지는 한, 이러한 수제악기의 가치와 위상은 오랫동안 빛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