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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조각질로 탄생한 흑두루미, 사라지지 않기를' - 옻칠 목조각 이동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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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조각질로 탄생한 흑두루미, 사라지지 않기를' - 옻칠 목조각 이동필 작가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3.18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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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수많은 액자와 장식품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화선지에 먹을 칠해 그린 수묵화인가 싶었는데, 들여다보니 조각품이다. 검은 테두리 액자 안 검은 옻을 입은 흑두루미가 여백의 미를 남기는 흰종이와 조화를 이뤄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담백하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내뿜는다.

두루미와 두루미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는 생생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과 같이 부드러운곡선의 표현, 나무 특유의 빛깔, 검은 옻칠의 조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두루미는 아주 작은 미니어처같으며 다리는 마치 바늘과 같이 얇다. 특히 빛과 만났을 때 더 고혹미를 낸다. 작품 뒤로 지는 그림자는 빛이 스미는 각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지만 깊이를 달리한다. 

작업실에서 이동필 작가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작업실에서 이동필 작가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작가 소개

안녕하세요. 나무를 조각하고 옻칠하는 작가, 이동필입니다. 거의 30년 동안을 나무와 옻칠에만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현재는 개인 공방에서 자연과 전통의 요소를 현대적 디자인과 함께 접목한 옻칠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어요. 미술 성적도 좋았고 조각에도 손재주가 남다르다고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술 대학도 진학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과 조각, 둘 다 좋아했지만 형편이 어려우니까 욕심을 내기도 어려웠고, 조각에 집중하면서 조각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형상물을 조각하면서 평범한 조각이 아닌, 우리나라의 문화가 담긴 참신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예로부터 사용한 옻칠과 자연 소재를 찾게 되었죠.

작품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점차 흑색 옻칠과 두루미를 소재로 많이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외에도 원앙, 거북, 물고기, 전통 악기 등 전통문화와 한국적 정서가 담긴 소재를 선택하였고요. 이를 통해 현대적 디자인의 액자, 장식품, 기념품 등의 문화상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의 전시 / 이동필 작가 제공
일본 요코하마에서의 전시 / 이동필 작가 제공


혼자 스스로 연구하고 만들었다고

네. 별다른 정규 교육 절차를 밟지 않았고, 특별히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저 혼자 한거예요. 저는 사실 예술이 꼭 정형화된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의 손재주와 감각을 믿고 자유롭게 표현하면 그것으로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도 혼자 모든 것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분과 교류하면서 배울 것은 배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도 수많은 디자이너와 옻칠하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죠. 그리고 그분들도 저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고 서로 그렇게 소통을 했던 거죠.


두루미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어릴 때에 다들 천 마리의 학이 소원을 이뤄준다고 믿고 학 접기를 해본 기억이 있을 거에요. 학(두루미)은 십장생의 으뜸이며 무병장수를 상징해요.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신성시되었죠. 여러 옛 공예와 그림에도 두루미가 나타나요. 그래서 우리 자연과 전통에 가장 알맞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다양한 작품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하다가 이제는 모습이 조금 달라지거나 거의 하지 않는 작품도 있지요. 하지만 이 두루미 조각은 이미 제가 초창기부터 시도한 소재이고 현재도 가장 많이 만드는 저의 대표 작품입니다.

작품은 각각의 스토리가 있어요. 이 작품은 '부부학'이라는 작품인데, 수컷 두루미가 고개를 들고 아내를 이끌고 있고 암컷 두루미가 그런 남편을 믿고 따라온다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족학'인데, 나뭇가지에 앉은 가족 두루미들을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형태를 제작하는게 아니라 각 작품마다 스토리를 담아 그것을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부부학 이동필 작가 제공
'부부학' 바탕은 양지를 사용했다 / 이동필 작가 제공
가족학 이동필 작가 제공
'가족학' 바탕은 한지를 사용했다 / 이동필 작가 제공

작품마다 찍혀있는 각인에 대해

저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각인입니다. 인장과 함께 학을 사인으로 넣었습니다. 학이 저의 대표 작품이자 정체성이다 보니, 학이 아닌 다른 작품에도 학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문 인장을 찍었는데, 그러다 보니 외국인 중에 제 작품을 중국 것인 줄 아는 분도 있었고, 한글을 놔두고 왜 한자를 쓰냐는 분도 있어서 저도 공감을 했고 한글 인장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만 작품에 따라, 원하는 고객에 따라서 한자인장을 쓰기도 하는데요. 특히 전통 악기 액자에는 전통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한문 인장을 주로 찍습니다.
 

거문고와 해금 / 이동필 작가 제공
거문고와 향비파 / 이동필 작가 제공


전통 악기가 진짜를 그대로 축소시킨 것처럼 사실적이다

네. 이 작품은 그냥 사진만 보고 따라서 조각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든 악기 작품은 비파, 거문고, 해금 등인데, 이것들을 만들 때 실제로 이 악기 자체에 대해서 깊이 공부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은 사전 지식 없이 악기를 그냥 그대로 따라서 만들려고 하려다 보니 틀리는 부분도 생기고 심지어 악기를 반대로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사물을 제작할 때, 그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제 작품에 대해 물어볼 때,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냐 하면,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그냥 보고 똑같이 만들었지 잘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검은색의 매력

처음부터 검은 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검은색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알록달록 요란한 색보다 검은색이 우리 전통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색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색 검정과 흰색의 바탕 종이가 조화를 이루어 소박하면서도 더 강렬한 느낌을 표현하지요.
 

MDF 액자 수지액자 / 이동필 작가 제공
밑에 두개는 플라스틱 수지로 만든 액자(좌), MDF 액자(우)로 다른 색깔의 작품도 시도하고 있다 / 이동필 작가 제공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나무에 앉은 수많은 새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작지만 세밀하게 조각됐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수요는 어떻게 되나

의외로 저의 작품을 사는 사람 중에 외국인이 대다수에요. 저의 작품이 입점해있는 곳 (인천공항, 한국공예관, 고궁박물관 등)이 외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한데, 반응도 정말 좋아요.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살리면서도 외국에서 익숙한 미니어처로 아담하게 만들거나, 어디든 장식하기 좋게 액자 형태로 담아내니까 그런 것이 매력을 끌었나 봐요.

처음에는 좀 큰 작품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여행 온 분이 가방이나 쇼핑백 등에 넣어 가기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아 휴대가 쉽게 더욱 소형화시켰어요. 원래는 정말 더 작은 작품도 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먹어 눈이 좋지 않아서 요즘 작품은 되려 커진 거죠. (웃음)


제작하는 과정, 그리고 시간

나무를 조각하고 사포질로 다듬으면서 만듭니다. 목재는 느티나무, 부빙가, 흑단 등의 나무를 사용해요. 나무가 어느 정도 단단해야 내구성이 좋고 오래가요. 하지만 너무 단단하면 작업이 힘들죠. 또 어떤 나무는 너무 광택이 나서 오히려 옻칠과 안 어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 끝에 꼭 알맞은 나무를 찾은 거죠.

보통 조각은 8~9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작은 작품이라고 더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정교하고 세심하게 작업을 해야 하니, 여기서 저만이 가진 기술과 작업을 동원해야 합니다. 칠까지 끝내고 작품을 건조하는데, 빠르면 삼일 정도가 소요됩니다.
 

이동필 작가 제공
원앙 조각에  색동옷을 입힌 '색동원앙' / 이동필 작가 제공


핸드메이드와 수익구조에 대해

저의 작품은 완전히 핸드메이드로 제작됩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꼼꼼히 다듬어서 표현하려고 해서 시간도 많이 걸려요. 그렇다 보니 당연히 대량생산되는 제품과 비교하면 생산성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죠. 요즘은 특히 신종 코로나 때문에 더욱 힘든 시기입니다.

요즘은 좀 더 간단하게 만들고 팔 수 있는 것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이 나무 장식은 '색동원앙'인데, 쉽게 조각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이 팔려서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비슷하고 쉬운 제품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말해왔듯이 하나하나 정성과 이야기를 담은 저만의 예술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게 고민입니다.

천연 옻칠은 솔직히 말하면 현대 여러 물감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표현이 꼭 더 멋진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천연 옻칠에는 옛 우리의 정서가 들어있고 정성을 담아 꼼꼼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에게 알맞아요. 저는 하나를 하더라도 거기에 나만의 정성과 표현, 스토리를 모두 담아내는 그런 작품을 하기를 원합니다.
 

솟대 / 이동필 작가 제공
솟대 / 이동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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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해서 나뭇가지에 붙인 액자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전수의 어려움

저는 이런 옻칠과 조각을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수십 년을 해왔지만 저의 기술을 물려줄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홍대아트센터에서 작품을 전시했을 때, 홍대생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겠다고 온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죠.

저의 작품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숙련되려면 몇 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쉽게 배우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도 있고 저의 기술을 계속 이어가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조차도 요즘은 힘든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저도 나이가 있는 편인지라, 기술을 전수해 줄 사람을 찾는 데에 많이 주력할 생각입니다. 물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작품을 알리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죠. 그런데 저의 기술이 1, 2년 만으로 전수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젊은 감성을 지닌 청년들이라면, 제가 하는 옻칠 나무 조각을 앞으로 더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하생을 받는 것도 좋지만 다른 청년 핸드메이드 작가들과도 협업하면서 함께 해나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과 소통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작품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작업실에서 /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30년을 나뭇조각과 옻칠에 바쳐온 이동필 작가,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속에 다져진 작가 만의 경험과 철학이 녹아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디자인과 접목하여 표현했고 이러한 참신함이 외국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기술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속에서 인내와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직접 배워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작가 조차 오랜 시간에 걸쳐 작품을 만들지만 이것을 팔아 남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천 번의 조각으로 탄생한 장인의 작품이 단지 생산성의 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것은 이동필 작가만의 딜레마가 아니라 앞으로도 수많은 핸드메이드 작가들에게 핸드메이드의 정신과 현실의 타협을 위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이동필 작가는 2009년 '제12회 인천광역시 관광기념품 공모전' 장려상 수상 및 '제39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모란민속공예전국대전'에 입상했고, 2010년 '서울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 장려상 수상 및 '제13회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특선작을 수상했다. 2011년 서울공예상공모전' 입상, '서울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 '제14회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2013년 '제2회 KDB전통공예산업대전' 입상, 2018년 제4회 전통공예상품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그리고 현재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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