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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상어의 가죽, 우아한 구름무늬를 표현하는 전통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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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상어의 가죽, 우아한 구름무늬를 표현하는 전통 재료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2.24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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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을 만드는 귀한 재료인 상어가죽,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인류는 예전부터 다른 동물의 가죽을 얻어 가공해서 공예품, 생활용품, 의류를 만들어 사용했다. 인간이 사용한 가죽의 종류는 아주 다양한데, 오늘날에 많이 쓰이는 가죽은 소가죽, 양가죽 등이다. 또한 현대에는 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인조가죽도 많이 활용된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의외로 물고기의 가죽인 어피(魚皮)도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된 동물 가죽이다. 물고기도 가죽이 있었는가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고기의 피부도 종류에 따라 두꺼운 것이 있다. 가죽을 이용할 수 있는 물고기는 상어, 가오리, 장어, 고래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상어가 가장 널리 이용되었다.
 

화한삼재도회(일본 에도시대 백과사전)에 묘사된 상어 그림
'화한삼재도회'에 묘사된 상어 그림

오랫동안 활용된 상어와 상어가죽

상어는 연골어류에 속하는데, 연골어류는 단단한 뼈가 아닌 물렁뼈를 가졌으나 대신 가죽이 튼튼하다. 상어는 조선시대에 사어(沙魚, 鯊魚)라고 불렸다. 이는 상어 가죽에 모래알 같은 돌기가 돋아있다고 하여 붙여진 말로 오늘날에는 사어가 부르기 쉽게 변해 상어가 됐다. 또한 상어가죽은 사어피(沙魚皮), 대랑피(大浪皮), 교피(鮫皮)라고도 불렀다.

상어는 이미 신석기 시대에도 이용됐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상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도 상어 이빨로 만든 목걸이가 나온다. 또한 패총 무덤에서도 상어의 흔적이 나온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의 '동국여지승람'에 처음 상어의 이름이 언급된다. 상어는 가죽 뿐만 아니라 고기는 약재와 식용으로 쓰고 뼈, 이빨 지느러미 등 모든 부분을 이용했다.

상어가죽은 계속 사포로 문지르면 비늘이 마모되어 동그란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 모양이 마치 상서로운 느낌을 주는 구름같다고 하였다. 또한 상어가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라는 점 때문에 제왕의 이미지와도 걸맞았고 구하기 힘든 귀한 재료라는 희소성 덕분에  왕실에서 애용되었다.

상어는 철갑상어, 청상어, 백상아리 등의 가죽을 이용한다. 가죽을 벗겨서 잘 말린 다음, 석회질과 잿물을 넣은 혼합물에 담가 지방질을 빼고 말리면 부드러워져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부드러워진 가죽을 재단하여 풀로 붙이고 다시 사포질을 하고 옻칠로 마무리한다. 또한 안료로 색을 입히거나 칠보, 나전, 보석 등을 박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다.
 

상어가죽으로 만든 와사비용 강판 [출처- 위키피디아, Haragayato]
상어가죽으로 만든 와사비용 강판 [출처- 위키피디아, Haragayato]
상어 가죽을 씌운 말안장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상어 가죽을 씌운 말안장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상어가죽을 활용한 다양한 공예품들

상어가죽은 거칠기 때문에 생강, 무, 과일을 갈거나 즙을 낼 때에 강판(薑板)으로도 활용했고 나무. 쇠 등을 다듬을 때에 사포로도 썼다. 또한 도장, 장롱, 함을 만들거나 별운검 등 도검의 자루를 장식하기도 했다. 특히 화살통을 만드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였는데, 교피전통은 상어가죽을 만든 화살통이란 뜻으로 왕 또는 높은 무반 만이 사용했다.

칼을 상어가죽으로 감싼 것은 삼한시대 환두대도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었다고 한다. 별운검(別雲劍)은 조선시대 당시 2품 이상의 무반이 차는 칼로, 특히 임금의 좌우에 서서 호위하는 벼슬인 운검과 나라에 큰일이 있어 임금이 믿을만한 사람을 뽑아 임명한 별운검이 주로 찼다. 이 별운검은 대부분 칼집과 손잡이를 상어 또는 가오리 가죽으로 장식했다.

보물 제326호인 '이순신장검'도 상어가죽으로 만들었다.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이 칼은 이순신 장군이 생전에 사용한 것으로 한 쌍으로 이루어졌고 길이는 약 2m이다. 칼자루에 음각으로 새긴 '갑오 4월 일조 태귀련 이무생작'을 통해 당시의 칼 장인인 태귀련과 이무생이 1594년(선조 27년)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칼집은 상어가죽으로 감쌌고 검은 안료를 칠했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이 직접 가죽에 새긴 검명이 있다. 첫 번째 칼의 검명의 뜻은 '석자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의 색이 돌변한다(三尺誓天 山河動色)'이며 두 번째 칼은 '한바탕 휘둘러 소탕하니, 핏물이 산천을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이다. 장군의 굳은 맹세를 엿볼 수 느낄 수 있다.

또한 왕의 도장인 어보(御寶)를 담는 상자인 외함도 상어가죽으로 만든 경우가 많은데, 옥이나 상아 등의 뼈를 조각해 만든 표면에 상어가죽 조각을 이어 붙였다. 특히 숙종과 고종의 외함이 남아있는 유물 중에 상어가죽으로 만든 대표적 작품이다.
 

교피전통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교피전통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어피장도(魚皮粧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어피장도(魚皮粧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멸종위기에 처한 상어, 보호에 힘써야

오늘날에 상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보호받고 있다. 이제 상어가죽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아직도 고래상어 껍질 등은 고급 핸드백에 사용된다. 특히 초호화 음식인 샥스핀, 캐비어 등은 많은 사람이 찾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밀렵꾼에 의해 수많은 상어가 희생되고 있다. 

상어가죽은 아름다운 무늬로 인해 조선시대에 왕실과 무반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재료로 애용됐다. 가죽은 다양한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고기와 지느러미, 뼈 등은 약재와 식량으로 다양하게 이용됐다. 이렇듯 상어는 인류의 역사에 정말 많은 것을 제공해준 고마운 동물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활약을 뒤로 한 채, 이제 상어는 생태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보호가 시급해졌다. 아름다운 상어가죽 공예품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제는 선조가 사용했던 옛 문화재로서 고이 남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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