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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고요한 시간을 바느질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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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고요한 시간을 바느질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
  • 윤미지 기자
  • 승인 2019.12.2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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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한복을 짓는다는 것은 보통 양장과 다르다. 양장은 명확한 패턴을 놓고 선을 그리며 만들 때부터 일정한 형태를 예상하게 하지만 한복은 조금 특별하다. 지금에 와서야 한복도 일정한 패턴을 그려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처음 그릴 때만 해도 이것이 한복으로서 어떤 모양을 지닐 지 한눈에 봐서는 언뜻 떠올리기 어렵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 미래 내 모습이 어떨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김인자 장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 젊은 날, 장차 앞으로의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해도 묵묵하게 일정한 호흡으로 바느질해 나가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는 어렴풋이 가지기도 했다고…

미완의 한복이 고운 비단에서 처음 재단될 때는 어떤 모습으로 지어질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완성의 형태는 수려하다.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일정한 간격으로 놓아지는 바느질 선 만으로도 그 가치는 높게 평가된다. 켜켜이 차분한 바느질로 한복을 완성시키듯 자신의 인생 또한 묵묵하게 걸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인자 /윤미지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윤미지 기자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복을 짓고 있는 김인자 입니다. 오랜 시간 한복을 짓고 바느질을 하며 살아왔네요. 나이를 먹고 강의를 하기도 하고 3년 전에는 청주시 전통 공예 명장으로 선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듯 저도 다른 외부적 활동보다는 저 스스로 바느질을 하고 한복을 지으며 보내는 시간들을 가장 행복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국내외로 여러 전시회나 패션쇼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역시 제 안에 가장 깊게 내재되어 있는 기쁨은 나 스스로 원하는 한복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한복을 배우러 온 학생들과 서로 배우면서 가르치기도 하는 시간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삶에 임하고 있습니다.


처음 한복의 세계에 문을 두드리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마 그 시절 대부분의 분들이 처음에는 생업을 위해 작업을 하게 되셨을 거예요. 저 역시 시작은 그랬어요. 근데 또 온전히 생계만을 위해 일했던 건 아니었답니다. 만약 돈을 벌기 위해서만 옷을 지었다면 돈을 쫓아다녔을 테니까요. 저는 돈을 좇기보다는 한복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1980년대에 바느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한복집에서 옷을 짓다가 독립을 해서 나와 계속 일하던 중 당시 무형문화재에 대한 신문 기사를 접하고 직접 찾아가게 되어 그 이후 정정완 선생님으로부터 기술을 익히게 됐어요. 그분의 제자로서 열심히 정진하면서 일도 배우고 했는데 사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는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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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윤미지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김인자 장인/윤미지 기자

한복을 짓는 법을 배운다는 것, 쉽지 않은 길이었을 듯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사실 제가 한복 짓는 일을 배우는 과정도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 국민 모두가 살기가 참 어려운 시대였기도 했죠. 정말 힘들 때는 버스비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젊고 내가 한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행복이었던 것 같아요. 지나간 세월들이 고단했다고 해서 그 마음에만 멈춰 있으면 아쉽잖아요. 지금은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자부심도 어느 정도는 있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한복을 배우겠다고 오면 참 기특하기도 해요. 쉽지 않은 길일 텐데 그래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배우겠다고 길을 찾는 일일 테니까요.


장인으로서의 삶, 많은 이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특별하게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복을 짓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죠. 그래도 한 가지 꼽는다면 과거 처음 한복을 배우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문을 두드리던 때, 그 열망이나 열정의 씨앗을 꺼트리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에요. 과거와 지금은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어요. 국력도 한층 더 높아졌고 그게 또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하지만 여전히 힘든 세상도 존재하잖아요. 그 안에서도 열정을 꺼트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제가 그 안에 속해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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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짓는 과정 중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있다면

저는 한복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의복만을 짓는다고 느끼지 않아요. 모든 옷이 그렇지만 추억을 담을 수 있죠. 공방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오기 어려우셨죠? 그래서 저는 이곳을 찾아오시고 저의 한복을 입기 위해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져요. 길을 찾아 이곳까지 오시는 분들을 위해 옷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원단을 자르고 꿰매는 것 이상의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전통에 대한 올곧은 정신이 필수로 기반되어야 하죠. 그래야 더 기품 있는 우리 조상의 복식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바느질, 침선이 고아야 선이 흐르듯 아름다운 한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차적으로 한복을 입으실 분의 피부 톤, 체형, 이미지 등을 고려해 옷을 완성합니다.



삼청동 끝자락에 위치한 김인자 장인의 공방은 골목길에 둘러싸여 고요한 멋을 지니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도 삼청동 근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면서 북악산을 끼고 있어 한층 더 자연에 근접한 분위기였는데 맑고 고즈넉한 풍경을 담고 있어 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인터뷰 중 본 기자는 장인의 안내에 따라 공방을 두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골목길의 정취를 둘러볼 수 있었다. 가끔 작업을 하다가 휴식이 필요할 때면 공방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는 김인자 장인은 “자연이 주는 영감과 편안함에서 많은 점을 배우고 터득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문득 장인이 이곳에 공방의 둥지를 튼 이유가 궁금해졌다.
 

삼청동 깊은 곳에 공방이 자리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내가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바느질을 배우고 공방을 독립하게 됐는데 ‘당초문唐草紋’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하게 됐죠. 처음에는 잠원동 쪽에서 공방을 운영했고 거의 20년 가까이 그곳에 있었어요. 그 후 가회동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공방을 옮기게 됐는데 옷을 짓는다는 것은 나를 스스로 묶는다는 것에 가까워요. 한 곳에 오래 자리를 잡고 앉아 수작업을 해야 하는데 자연에 속해서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산속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방을 옮겼죠. 그리고 누구나 어렸을 적 꿈이 있잖아요.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는데 아주 어렸을 때 내가 그렸던 모습이랑 지금 내가 얼마나 닮았을까 싶었어요. 어렸을 적에 나무가 보이는 집에 앉아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희 공방 앞에 작은 정원을 보시면 큰 나무가 보이거든요. 여러모로 지금의 공방은 저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고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북악산이 배경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 두길 잘했다고 여기는 것은 이곳을 찾는 분들이 한복을 입고 단란한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예요.


가령 어떤 모습들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저는 한복을 만드는 과정도 저에게 참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라고 여기면서 동시에 그 옷을 입은 분들이 얼마나 행복한 기억을 갖는지도 큰 관심사에요. 요즘에는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지는 않죠. 특별한 가족 행사나 명절, 혼례 시 많이 한복을 맞추곤 하는데 가족 손님들이 오시면 사진을 많이 찍으세요. 한복을 입고 정원에 나가서 나무와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시는데 자녀의 혼인을 준비하는 중년의 아드님과 손녀의 혼인을 앞둔 그의 어머니께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찡했어요. 중년의 아들과 그 어머니가 같이 사진 찍을 일이 요즘에는 흔치 않죠. 한복을 매개체로 가족의 따뜻한 정과 훈훈한 행복을 느끼는 모습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당초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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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배운다는 것, 과거와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짧은 시간 안에 국가가 눈부신 성장을 이루면서 과거와 현대의 모습은 많은 게 달라졌어요. 그럼에도 한복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만나면 마음속에 전통문화를 갈망하는 이들은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다는 점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구나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옛날 같은 도제식 교육은 어려워졌어요. 많은 대학기관에서 패션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전통 복식인 한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 관련 수업을 듣기도 해요. 제가 배울 때까지만 해도 정형화된 한복 패턴이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섬세한 작업이 중요하면서도 그때는 눈대중으로 천을 자르고 만졌어요. 건국대학교, 목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었는데 지금은 한복을 순조롭게 전승하기 위해서 패턴도 기준이 생기고 그때에 비해서 배우기에는 좋은 환경 같아요.


오랜 시간 한복을 지어 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으셨을 듯합니다

제 주변에 좋은 이들이 참 많았고요.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잣대가 있는데 그것은 성실과 진실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거창한 듯하지만 큰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꾸준함을 가지고 움직이고 거짓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다 보니 여러 고비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주기도 했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삶을 살았는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밥은 본인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주변에서 상차림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만 밥만큼은 본인이 지을 줄 알아야 상을 완성 시키죠.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전통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란 것 같아요.

온고지신의 법도를 지키는 것.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대에 와서 무조건적으로 옛날 복식을 고집하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아니거든요. 과거 조상의 지혜가 담긴 한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대에 알맞은 디자인, 소재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죠. 또는 한복에서 착안한 디자인의 양장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지금은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있고 그렇기에 한 가지로 옳음을 단언할 수 없어요. 다만, 저는 17세기의 아름다움은 그때의 멋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현대적으로 재디자인 된 한복도 원형의 중요한 요소들을 이어간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디자인이 될 수 있어요. 


전통 한복의 현대적 재구성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이 듣고 싶습니다

한복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면 의외로 지금 입어도 세련되게 착용할 수 있는디자인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양장 자체도 전통 디자인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옷들도 있고요. 물론 옷의 외형이 시대가 지나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제작 과정도 어느 정도는 달라졌어요. 과거엔 일상복으로 입었고 그렇다 보니 옷이 쉽게 상하거나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세 번 침선했는데 지금은 특별한 날에 주로 입다 보니 그렇게 많이 바느질할 필요가 없고요. 그래도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죠. 어제를 알면 내일을 알 수 있듯, 현대화가 필요하지만 옛 조상의 지혜를 지키는 것도 분명 중요한 요소에요. 점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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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많이 전시를 하셨잖아요

네, 저는 비교적 전통분야에서 일하면서 해외 일정들이 많은 편에 속했어요. 그때마다 그 경험들은 저에게 큰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해내고 나면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내가 조금이나마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해요. 


그들에게 한복을 알리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뭘까요

98년도에 프랑스 파리에 갔어요. 파리 뒷골목에 보면 여러 가지 빈티지한 물건들을 파는 곳이나 작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요. 그때 그곳을 둘러보니까 중국의 전통의상인 치파오나 인도의 전통 의복 등이 편안하게 리디자인 되어서 판매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궁금해서 인도의 전통 의상을 하나 구입해서 입어봤어요. 조금 놀라웠던 게 굉장히 편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가끔 편하게 옷을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착용하기도 하는데 먼저 외국인들에게 한복을 소개하려면 아무래도 편해야 한다는 부분이 중요할 것 같아요.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고 편안한 착용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 같은데 그 부분도 점진적으로 연구를 해봐야 하는 것이겠죠. 우리의 유려한 선이 흐르는 한복의 매력을 지키면서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도록요.


한복의 유려한 선, 우아함이 돋보여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한복은 참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의복이에요. 저는 저고리의 여러 요소들 중 고름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인데 사람이 활동을 하면 고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잖아요. 차분하면서도 동적인 미를 갖추고 있어서인지 참 아름답게 와닿더라고요. 이런 점들은 현대 의복과 접목을 시켜도 참 잘 어우러질 것 같지 않나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한복을 지으며 삶을 걸어갈 듯합니다. 손님의 옷을 짓는 것도 참 행복한 과정이지만 나의 작업을 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꾸준히 앞으로도 바느질을 할 생각이에요. 등산을 할 때 산 아래서 본 이들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정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게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잖아요. 함께 등산했다는 믿음과 길동무로서 의지가 됐다는 점이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전통 분야가 많이 어렵지만 서로 힘을 주고 의지하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작업 환경에서 길동무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옛 것에 배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내가 배운 것을 전승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 또한 내 삶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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