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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선망하는 불후의 악기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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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선망하는 불후의 악기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은?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11.26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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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아무도 구현하지 못한 최고의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든 스트라디바리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오늘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음악의 대중화로 인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것이 많다. 하지만 장인이 직접 손수 제작한 수공예 악기는 더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가격도 그만큼 비싼 고급 제품이다. 따라서 아직도 음악인에게는 이러한 명장의 악기는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는 역사상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으로서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낙찰될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보여주는 꿈의 악기이다. 이 바이올린은 깊고 예리하며 큰 음량의 소리를 내는데, 지금까지 그 어떤 다른 악기나 복제품조차도 이 진품의 소리를 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악기를 만드는 스트라디바리 [출처- 위키피디아]
악기를 만드는 스트라디바리 [출처- 위키피디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악기장의 길을 걷다.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든 사람은 불후의 악기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이다.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의 표준을 확립하는 데에도 기여하여 음악사의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고, 악기를 만드는 장인 중에서 오늘날까지 마치 그 이름 자체가 대명사와도 같은 명예를 갖게 되었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북부의 롬브르드 지방의 크레모나에서 태어났다. 크레모나는 스트라디바리 외에도 아마티, 과르네리 등 걸출한 악기 제작 가문들이 탄생한 '악기의 도시'로 유명하다. 안토니오도 어릴 때부터 당시 가장 뛰어난 장인이었던 니콜라 아마티의 공방에 제자로 들어가 악기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오랫동안 기술을 익힌 안토니오는 1680년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이름을 넣은 바이올린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20년 동안은 아마티를 도우며 일했다. 악기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그는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1700년부터 독자적인 자신의 악기를 만들게 된다.
 

모두가 선망하는 꿈의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스트라디바리는 악기의 길이와 각도 및 곡선, 목재의 품질, 울림통의 F홀의 형태, 바니시(니스) 칠 등 악기를 만드는 요소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 요소들을 하나하나 오랜 실험을 통해 연구해나가며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우수한 기술력을 체계적으로 쌓아 나갔다.

그는 악기 각 부분에는 단풍나무, 버드나무, 등나무 등의 목재를 선별했는데, 탁월한 안목으로 고품질의 목재만을 골랐다. 또한 악기의 길이는 기존보다 롱 패턴으로 길게 하고, F 홀은 다른 바이올린과 달리 살짝 비대칭으로 만들어 독특한 구조를 내었다. 스트라디바리의 독특한 이 F 홀은 독특한 음색을 내게 하고 누구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약 1200개의 악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현존하는 것은 650여 개인데, 이 중에서 540개가 바이올린이며 나머지는 첼로와 비올라, 기타 등이다. 특히 그가 만든 악기 중에 1698년부터 1725년 사이에 만든 것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렇듯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는 엄청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유명 음악인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필수와 같다. 프랑스의 유명한 첼리스트, 장 피에르 뒤포르와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바이올린 연주가인 정경화와 정명화 자매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소지하여 연주했다.
 

마드리드 왕궁에 전시된 스트라디바리우스 [출처- 위키피디아, Σπάρτακος]
마드리드 왕궁에 전시된 스트라디바리우스 [출처- 위키피디아, Σπάρτακος]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

스트라디바리는 최근에도 악기의 비밀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왜 현대의 악기들이 300년 전의 수제 바이올린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트라디바리가 살고 있던 시대가 유독 추운 날씨를 가졌던 덕분에 그 당시 자랐던 나무의 품질이 높았다는 주장, 스트라디바리가 사용한 북이탈리아에서 나온 도료의 품질이 좋았던 덕분이라는 등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또한 스트라디바리우스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목재 처리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이는 복제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명성에 다소 흠이 가는 실험도 나오고 있다. 현대의 바이올린과 섞어 청중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현대의 바이올린이 더 소리가 좋다고 답한 응답자가 상당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명성이 과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대한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흥미로운 연구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쌓인 고악기를 현대의 기술로 재현한 상품들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을 수도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스트라디바리우스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스트라디바리우스 'Ole bull' [출처- 위키피디아]

현대의 과학 기술은 분명 위대하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이 있기까지 수많은 장인의 손기술이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스트라디바리는 오늘날의 악기와 음악인들에게 이미 많은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인물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의 명성은 퇴색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에도 수많은 악기 장인이 직접 자신의 손기술로 악기를 만들고 있다. 스트라디바리가 과연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치솟는 자신의 악기에만 매달리기를 바랄까?

자신을 뛰어넘는 더 나은 악기가 나오고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음악이 연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음악과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라고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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