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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글을 있게 한 장인, '각자장' 나무에 글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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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글을 있게 한 장인, '각자장' 나무에 글을 새기다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11.25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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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전파와 계승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 문화를 만들어내다
현판 [출처-pixabay]
현판 [출처-pixabay]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나무판에 글자와 그림을 새겨서 만든 것을 예전에는 각자(刻字) 또는 서각(書刻)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나무를 조각한 그림과 글씨들은 주로 두 가지 목적으로 쓰였다.

하나는 사찰, 서당 등의 내외부에 걸어 넣는 '현판류'이며, 다른 하나는 인쇄를 하기 위해 제작하는 '활자류'이다. 현판류는 주로 정면으로 새기는 정서각(正書刻)으로 만들었으나, 활자류는 새긴 글자에 색을 칠하고 종이에 찍어내서 인쇄를 하기 때문에 글자를 좌우를 바꿔서 새기는 반서각(反書刻)으로 만들었다.

각자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이미 널리 활용되었으며, 나무 외에도 돌 등에 새기는 경우도 많았다. 돌에 문자·그림을 새기는 것을 석각(石刻)이라고 한다. 석기인들도 동굴 또는 바위에 그림을 새겼다. 이후에는 문자가 발명되고 문화 수준도 더 발전하게 되면서 암벽, 비석, 탑, 기둥, 석상 등에 글과 그림을 새겼다.


나무활자의 역사와 문화재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점차 더 새기기 쉬운 나무를 애용하게 된다. 우리 옛 건물에는 명칭을 쓰거나 새긴 현판을 내거는 문화가 있어 나무활자도 발달했다. 특히 불교문화의 진흥은 각자 문화를 진흥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불교 경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책을 많이 찍을 수 있는 인쇄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려 시대인 1234년에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나무 활자 제작 역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 목판인쇄로 찍어낸 책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많은 논란이 있으나 세계 최초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출처- 문화재청]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출처- 문화재청]

고려 고종 시기(1236~1251년)에 16년에 걸쳐 간행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르는데,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자랑스러운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대장경판은 8만여 판에 수천만 자의 글씨를 새겼는데, 글씨 하나하나가 아주 정밀하고 일정하다. 이를 통해 우수한 우리의 인쇄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다.

나무활자는 오랫동안 활자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1234년 금속활자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저렴한 제작 비용 덕분에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쓰였다. 국보제70호인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원본도 목판인쇄로 찍어낸 것이다.

나무활자는 목판인쇄와 목활자로 나뉘는데, 목판인쇄는 책의 한 면을 통째로 만들어 찍어내는 것이며, 목활자는 글자를 하나씩 만들어서 이를 조합해 한 면을 만들어 찍어낸다.
 

각자장의 작업 모습 [출처- 문화재청]
각자장의 작업 모습 [출처- 문화재청]

각자 만드는 장인, 각자장

이렇게 활자나 현판 등의 다양한 목판을 만드는 장인을 각자장(刻字匠)이라고 부른다. 이들 각자장은 신라와 고려 및 조선시대의 인쇄문화의 주축을 이룬 장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목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목재를 사용해야 한다. 목판은 대추나무, 배나무, 자작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아주 다양한 나무를 사용했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다. 대추나무는 단단하고 무거워서 내구성이 좋았고, 반대로 배나무는 연한 대신 그만큼 작업이 수월했다. 또한 팔만대장경의 65%는 벚나무로 만들어졌는데, 강도가 가장 적당하며 나뭇결이 매끄럽고 잘 썩지 않았다.

목재를 알맞게 재단하고 그다음에는 결을 삭히는 연판 처리에 들어간다. 결을 삭히기 위해서는 바닷물 또는 소금물에 담그는 방법이 있는데 담가둔 목판을 다시 충분히 말리고 표면을 대패 등으로 매끄럽게 다듬는다. 이제 다듬은 연판에 글씨 등을 새기면 되는데, 먼저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판목에 뒤집어서 붙인다. 이때 기름을 바르면 글씨가 더 잘 비친다.

이제 칼 등으로 새기면서 작업하면 된다. 새기는 것은 글자가 드러나게 하는 양각, 글자가 움푹 들어가는 음각, 이 둘을 섞는 음양각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잘못 새긴 것이 생기면 잘못된 글자만 파내어 다른 나무를 박고 다시 새길 수 있다. 작업이 끝나면 안료로 채색을 하고 천연 도료인 옻칠을 하여 완성한다. 또한 목판을 연결하기 위해 홈을 파서 마구리(손잡이)를 끼운다. 

각자장에겐 오랜 작업과정을 견딜 수 있는 인내력 뿐만 아니라 글씨를 정교하게 새길 수 있는 섬세한 조각실력, 서예실력 및 나무에 대한 깊은 이해 등이 요구된다.
 

각자로 찍어낸 서책 [출처- 문화재청]
각자로 찍어낸 서책 [출처- 문화재청]

다양한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는 각자장

현재 각자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1996년에 각자장 제1호 보유자로 인정된 故 오옥진(1935~2014) 각자장은 철종 시절, 벼슬을 지냈다가 낙향하여 각자 일을 했던 증조부인 오성수 선생으로부터 대를 이어 기술을 배웠다.

이후, 오옥진 장인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특히 2013년 제2호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각한 장인도 오옥진 장인을 만나 40여 년 넘게 각자장 일을 했다고 한다. 이들 두 장인은 지난 2008년 불타버린 숭례문 복원에서 현판을 제작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아울러 김 장인은 지난해 5월에는 6.25 전쟁 당시 화재로 유실된 훈민정음 목각판을 3년의 작업 끝에 복원했다.

이밖에도 강원도 무형문화재 16호 이창석 각자장,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0호 박혁규 각자장, 충청북도 문형문화재 제28호 박영덕 각자장 등도 다양한 목판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박영덕 각자장은 지난 7월 개봉한 사극 영화 '나랏말씨미'에 출연하여 각자장을 알리기도 했다.
 

이창석 장인이 만든 목활자판 [문화재청 제공]
이창석 장인이 만든 목활자판 [문화재청 제공]

각자장은 오랫동안 인쇄와 기록을 관장하며, 당시 사회의 문화 보존과 전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장인이다. 오늘날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내려오는 진귀한 고서적과 문화재 건물의 현판에서 이들 각자장의 피땀어린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자랑스런 한글도 각자장이 만든 훈민정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비교적 쉽게 타자를 치면서 언제든지 글을 쓰고 볼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각자도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가끔은 글을 직접 써보거나 새기는 등의 아날로그적인 활동이 끌릴 때가 있다. 무언가를 새긴다는 것은 오랜 인류의 원초적인 활동이었다. 직접 나의 감성을 담아 새기는 각자는 대중에게도 분명 좋은 예술 활동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온 각자장의 노고가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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