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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시초를 정립한 명품 수제 악기 가문, '아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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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시초를 정립한 명품 수제 악기 가문, '아마티'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11.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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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디바리를 길러낸 최고의 악기 장인들,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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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음악만큼 사람의 감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예술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음악 연주를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사람들은 가수나 연주자 등 사람에 집중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훌륭한 음질을 내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의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솜씨좋은 수많은 장인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랫동안 노력해왔을 것이다.

악기의 본고장, 아마티 가문과 크레모나

이러한 장인들의 노력 끝에, 현대에는 상당한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표준과 규격을 통해 이제는 악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악기에 대한 대중의 접근도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을까?

악기 중에서도 바이올린은 '악기의 여왕'이라고도 불릴 만큼,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현악기로 자리 잡았다. 바이올린은 풍부한 표현을 연출할 수 있기에 아주 다양한 음악 연주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올린의 표준을 확립한 유명한 악기 가문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아마티(Amati) 가문이다.

아마티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크레모나(cremona)라는 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대를 이어 악기를 만들어온 가문이다. 크레모나는 비록 작은 도시이지만 이곳에서는 내로라하는 수많은 악기 가문이 나왔다. 특히, 아마티 가문은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 등의 불후의 악기 장인을 길러낸 악기장들의 대부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안드레아 아마티
안드레아 아마티의 바이올린, 1559년 스페인의 필립 2세의 결혼식에서 선물한 악기 ​​세트의 일부로 추정된다. 다양한 기하학, 꽃 문양과 라틴어 글귀가 새겨졌다. [출처- 위키피디아, 
Jaime Ardiles-Arce]

바이올린의 표준을 확립한 '안드레아 아마티'

이렇듯 현대 바이올린의 표준과 명품 악기장들의 대부였던 아마티 가문을 처음으로 일으킨 사람은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1500~1577)이다. 물론 안드레아가 사실 최초로 바이올린을 만든 것은 아니다. 바이올린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전설에 따르면, 이탈리아 살레 마을에 사는 에라스모라는 안장 제작자가 건조 중인 양의 창자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바이올린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드레아 아마티는 난립하던 바이올린의 형태와 구조를 오랜 연구를 통해 재정립하고 후대에 제시한 사람이었다. 또한 비올라와 첼로 역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현악기에 3개의 현이 있었던 것을 4개로 바꿔 정립시켰으며 좋은 원목과 바니시를 통해 바이올린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니스라고도 부르는 바니시(varnish)는 악기 또는 가구에 윤기를 내고 내구성을 강화하는 마감재인데, 악기의 품질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소나무에서 얻는 테레빈유 및 천연수지로 만드는 천연 바니시는 생산량이 한정되었고, 사용법도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필요했다. 아마티는 유럽 전역을 직접 발로 뛰며 좋은 바니시를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특히 그가 1572년 만든 첼로 'the king'가 유명한데, 이 첼로는 프랑스의 최고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뒤포르(Jean Lous Duport, 1749~1819)가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고 한다.

안드레아의 바이올린은 크기가 작은 편이며 아름다운 음색을 갖추었다. 하지만 큰 연주홀에서 쓰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면도 있었다. 이후, 안드레아의 두 아들인 안토니오와 지롤라모가 악기 제작의 대를 잇게 되었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것을 더욱 개량하여 더욱 아름답고 튼튼한 악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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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지롤라모 아마티가 제작한 비올 [출처- 위키피디아, Paul Hermans]
니콜로 아마티 [출처- 위키피디아, Jacques-Joseph Lecurieux作]
니콜로 아마티 [출처- 위키피디아, Jacques-Joseph Lecurieux作]

스트라디바리 등 다양한 악기장을 길러낸 '니콜로 아마티'

지롤라모의 아들인 니콜로 아마티(1596~1664)는 아마티 가문에서 가장 위대한 장인으로 꼽힌다. 그는 많은 연구 끝에 기존보다 더 큰 바이올린인 '그랜드 아마티'를 만들었다. 이 바이올린은 크기에 걸맞게 힘차고 경쾌한 음색을 낼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바이올린은 강하고 깨끗한 더블 퍼플링(악기 테두리를 나무를 끼워 박아 장식하는 기법)과 독특한 달팽이 장식 및 흑색 스크롤 등을 특징으로 하는 획기적 디자인인 '그랜드 패턴'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도 니콜로는 과르니에르와 스트라디바리, 스타이너같은 명장들을 제자로 길러내기도 했다. 오늘날 크레모나가 악기의 도시로서의 명성을 갖추게 된 데에는, 자신만의 악기 제작뿐만 아니라 자신 이상으로 걸출한 실력을 가진 장인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니콜로 아마티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니콜로 아마티가 1654년 제작한 바이올린, 'Brookings' [퍼블릭 도메인, picryl.com]
니콜로 아마티가 1654년 제작한 바이올린, 'Brookings' [퍼블릭 도메인, picryl.com]
니콜로 아마티가 1654년 제작한 바이올린, 'Brookings' [퍼블릭 도메인]
니콜로 아마티가 1654년 제작한 바이올린, 'Brookings' [퍼블릭 도메인]

이후, 4대를 계승한 니콜로의 아들 지롤라모 아마티(1649~1740)는 약 280개의 악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의 재능은 조상들에 못지않았으나, 경영 능력이 다소 부족하여 빚에 시달렸다. 또한 그의 시대의 아마티 가문은 스트라디바리와 루게리, 과르네리 등 쟁쟁한 경쟁자들과도 싸워야 했기에 점점 빛을 잃게 되었다. 또한 복제품까지 성행하여 점차 인식이 나빠지게 되었으며 결국 그의 대에서 악기 제작이 끝나고 만다.

이렇게 아마티 가문은 4대째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 아마티 가문의 악기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거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어 시대연주 재현 등에도 쓰인다. 아마티 가문이 남긴 의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미 바이올린의 형태와 구조를 확립하여 후대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고 원목, 바니시 등 재료의 연구에서 낸 성과의 가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아마티가문은 악기 만이 아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악기 장인 가문을 길러내어 유럽 더 나아가 세계 전역에서 훌륭한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퍼트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렇듯 현대에도 세계의 음악가와 악기장이 아마티 가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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