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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담뱃대를 만들던 장인, '백동연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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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담뱃대를 만들던 장인, '백동연죽장'
  • 김강호 기자
  • 승인 2019.11.18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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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담뱃대를 넘어 당시 신분과 문화를 모두 담아내고 표현한 문화 예술품인 백동연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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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도메인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위의 사진은 구한 말인 1886년에 서양인이 조선을 방문하여 찍은 호랑이 잡는 포수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세 명의 조상들의 자세와 눈빛에서 상당히 매섭고 강렬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목에 걸치고 있는 것은 무기인 화승총인데, 손에 들고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담뱃대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저렇게 긴 담뱃대를 이용해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담뱃대는 한자로 연죽(煙竹)이라고도 하며, 연죽은 다진 담뱃잎인 연초를 넣는 연초주걱과 대롱, 그리고 입으로 무는 부분인 물부리로 이루어진다.

연죽은 신분에 따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길게 만든 장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너무 길면 스스로 불을 붙일 수 없어 시종이 대신 붙여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곰방대는 주로 평민들이 사용했다. 또한 휴대하기 편한 외출용인 행죽, 손님에게 접대하는 객죽, 토리 부분이 육각으로 된 육모죽 등 용도와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눈다.

담배는 종이에 담뱃잎을 말아피는 궐련, 담뱃잎을 절이고 파이프와 같은 물건에 넣어 피우는 파이프 담배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파이프형 담배가 임진왜란 때에 먼저 들어왔으며, 궐련은 구한말 때에나 들어왔다.
 

박물관에 전시된 연죽 [출처- 위키피디아- Jocelyndurrey]
박물관에 전시된 연죽 [출처- 위키피디아- Jocelyndurrey]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 8촌(寸)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 통에 담거나 혹은 은(銀)이나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서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킨다고 하는데, 오래 피우면 가끔 간(肝)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이 풀은 병진·정사년(1616~1617년)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임술년(1621~1622년)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茶]와 술을 담배로 대신하기 때문에 혹은 연다(煙茶)라고 하고 혹은 연주(煙酒)라고도 하였고, 심지어는 종자를 받아서 서로 교역(交易)까지 하였다. 오래 피운 자가 유해 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하여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일컬었다.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1638년)

남아메리카에서 임진왜란 때에 전래된 담배

담배는 남아메리카를 원산지로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담뱃잎을 말리고 숙성시킨 후에 불을 붙이고 그 연기를 들이마셨다. 신대륙을 발견했던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으며 이것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이후, 차츰 담배가 대중들에게도 기호품으로 퍼져나갔고 유럽 외의 세계 곳곳에서도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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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송학문백동담배대 [문화재청 제공]

일본과 중국은 16세기경 유럽 상인에 의해 담배가 전파되었으며 한국은 임진왜란 직후인 광해군 때에 일본에서 고추, 호박 등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담배는 한방에서 몸에 좋은 약초로 활용됐다. 소화 불량과 통증을 완화시키고 종기, 지혈, 악창, 옴 등에도 담배가 유용하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엄청난 중독성 덕분에 금세 대중들에게 퍼져나갔다. 네덜란드인 하멜(1630~1692)이 쓴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웠다고 했을 정도이다. 당시에는 현대의 담배처럼 온갖 화학 첨가물을 넣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담배의 해악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또한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아주 중요시된 조선이지만 당시에 유독 담배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기록에 다르면 조선에서는 서당에서조차 훈장과 학도가 맞담배를 피울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 제 15대왕, 광해군(1575~1641)은 담배를 아주 싫어해 신하들이 왕 앞에서 피지 못하게 하였다. 실학자 이익(1681~1763) 역시 저서 '성호사설'에서 담배가 좋은 점도 있지만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빆으로는 사람을 늙게 하는 등, 해로운 점이 더 많다고 기록했다. 이웃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담배의 해악 때문에 금연령이 몇 차례 내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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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의 구조와 명칭

백동연죽과 연죽을 만드는 백동연죽장

유럽과 미국에서는 나무, 점토, 광물 또는 옥수수대 등 다양한 재료로 담뱃대를 만들었는데, 보통 우리나라 담뱃대는 가운데 대롱은 대나무로 만들고 물부리와 연초주걱은 금,은,동,쇠 등으로 만들었다. 특히 많은 연죽들이니켈과 구리의 합금인 백동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백동은 잘 녹슬지 않고 가공이 용이했다. 이렇게 백동과 대나무를 섞어 길게 만든 연죽을 백동연죽이라고 하며 백동연죽을 만드는 장인은 '백동연죽장(白銅煙竹匠)'이라고 불렀다.

백동연죽장은 금속과 목재 등을 두들겨 만드는 단조 방법으로 펴서 모양을 만들고 다시 땜질을 하였다. 모양을 만든 후에는 높은 신분의 물건은 표면에 구름, 꽃 등의 문양과 한문 등 글씨를 정으로 새기고 다시 금, 은 등으로 상감했다. 따라서 백동연죽장은 섬세한 금속세공과 목공 실력 및 섬세한 예술 감각 등이 필요했다.

백동은 보통 동 58%, 니켈 37%, 아연 5%를 넣어 만든다. 여기에 빛깔을 내기 위해 비상 등을 살짝 첨가하기도 한다. 또한 백동 외에도 대꼬바리 등은 구리, 놋쇠 등으로 만들기도 하며 물부리 역시 상아, 쇠, 불, 옥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데꼬바리를 만드는 백동연죽장 [문화재청 제공]

시기가 흐를수록 담뱃대는 더욱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사치가 심해졌다. 한편 백동연죽장은 다른 수공예 장인과는 달리 경공장에서 의무적으로 소속되어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담배의 전래가 비교적 늦었고 특정 계층 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호품이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궐련이 들어오고 간편하고 값싼 종이 담배가 계속 개발되면서 점차 담뱃대는 자취를 감췄다. 1993년에는 집안의 대를 이어 연죽을 만들고 있는 황영보 장인(1932~2018)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白銅煙竹匠)'으로 등록되었다. 오늘날에는 아들 황기조 전수교육조교가 전라남도 남원에 아버지가 설립한 전수교육관에서 계속해서 기술을 계승해오고 있다.

오늘날 담배는 해로운 물질로 인식되어 점점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 달리 백동연죽장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계승·보존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백동연죽이 단순한 담뱃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연죽을 만드는 장인, 형태, 제조 방법 등 모든 것에서 당시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황영보 장인이 만들어내는 담뱃대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행해왔던 공예의 정수가 들어있다. 백동연죽은 그래서 단순한 담뱃대가 아닌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이어나가야 할 문화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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