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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통 의상 ②] 중화 문명을 만든 민족, 한족의 옷인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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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통 의상 ②] 중화 문명을 만든 민족, 한족의 옷인 '한푸'
  • 최나래 기자
  • 승인 2019.10.23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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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주류를 차지하는 민족인 한족이 입는 한푸에 대해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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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최나래 기자] 한국에는 '한복', 일본에는 '기모노'가 있다고 하면 중국의 전통 의상으로는 보통 '치파오'를 떠올린다. 하지만 치파오는 중국 변방에 거주하던 소수민족인 만주족의 입는 의상이었다. 하지만 17세기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석권하면서부터 치파오가 퍼져 나갔고 짧은 기간 동안 세계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의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족의 전통 의상, 한푸

그렇다면 그 이전 시대의 중국인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오늘날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며 오랫동안 중원의 주인으로 활동해온 중국의 주류 민족, 한()족은 치파오 이전에 한족만의 고유한 전통 의상을 입어왔다. 이 옷을 '한푸(漢服)'라고 부른다. 한푸는 말 그대로 한인의 옷이라는 뜻이며 한족이 치파오 등 다른 민족의 옷을 오랑캐의 옷이라는 뜻의 '호복(胡服)'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청나라 이전만 해도 한푸는 수천 년 동안 중국인과 동아시아에서 가장 주류로 활약했던 전통 의상이었으며 중국 주변 민족과 국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 베트남, 일본 등 여러 동아시아 민족의 왕조에서 왕이 입는 옷인 어의와 관리들이 입는 관복 등은 모두 한푸에서 나온 것이다.

한푸는 오랜 세월과 수십 개의 왕조를 거치며 발전했다. 한족의 한푸는 워낙 오랜 변천을 겪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특징을 보면 ① 동파관, 복두 등 관모 ②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자형의 원피스(one-piece)와 치마 형태의 복식 ③ 우측으로 여미어 입는 상의 ④ 단추 대신 허리띠인 요대및 매듭 사용 ⑤ 목을 감싸는 차이나 카라를 들 수 있다.
 

한나라 시대의 복식 [출처- 위키피디아, Brücke-Osteuropa]
한나라 시대의 복식 [출처- 위키피디아, Brücke-Osteuropa]

한푸의 변천 과정

한푸의 기원은 중국 역사의 시초이자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삼황오제 시기부터 시작된다. 통감외기(通鑒外紀)에 따르면 선인들은 새와 짐승의 털 및 마를 이용한 옷을 입었다고 하며 신화적인 인물인 황제(黃帝)의 왕비, 누조(嫘祖)가 백성들에게 누에의 실로 만든 베 등을 통해 옷을 짜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주나라 시대부터 의관예제에 따른 관복제도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복식은 신분에 따라 엄격한 등급을 두었다. 천민과 양인, 귀족은 물론 관리들 사이에서도 등급에 따른 복식을 입어야만 했다. 물론 백성들은 가난했고 고된 노동을 해야 했기에 애초에 비싼 옷을 입을 수 없었고 평상시에는 삼베 등으로 지은 활동하기 좋고 평범한 단색의 상의와 바지를 입었다.

한나라 때부터는 어깨부터 발까지 한 번에 길게 내려가는 장포(長袍)와 넓은 소매가 전형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계급이 높은 옷일수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수를 수놓았다. 이후에는 위진남북조 시대 등 혼란했던 시기도 있었고 이때는 북방민족이 뒤섞여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 좀 더 활동적이고 느슨한 복장이 유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남성용 예복, 도포(道袍) [출처- 위키피디아, Supersentai]
남성용 예복, 도포(道袍) [출처- 위키피디아, Supersentai]
중국 미인도, 사녀도에 나오는 당나라 여성 복식
중국 미인도, 사녀도에 나오는 당나라 여성 복식

당나라는 실크로드 등을 통해 국제적 교류가 활발했으며 이국의 문화와 염색, 실크 직조 기술을 받아들여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복식이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의복이 개방적으로 변했는데, 옷깃이 가슴까지 내려가고 소매는 더욱 넓어졌으며 투명하고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가렸다. 이러한 당나라의 복식은 신라와 발해,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목둘레가 둥근 깃의 외투인 단령(團領)은 당나라에서부터 정착된 관복으로 일본과 베트남, 한국에도 이 단령을 채용했다.

한편 송나라 때에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좀 더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단령과 머리에 쓰는 복두는 계속 유지하면서 유학자들이 입는 심의(深衣)가 이때 등장한다. 이 심의는 흰색의 베로 옷을 자꾸 깃과 소맷부리 등에는 검은 비단으로 선을 두른 두루마기 형태의 긴 겉옷이다. 이 옷은 조선시대의 선비의 일상복 및 의례복으로 널리 쓰였다.
 

심의 [출처- 위키피디아, Supersentai]
심의 [출처- 위키피디아, Supersentai]
가장 오랫동안 쓰인 여성 복식, 유군(襦裙) [출처- 위키피디아, Jiao Bingzhen]
가장 오랫동안 쓰인 여성 복식, 유군(襦裙) [출처- 위키피디아, Jiao Bingzhen]

오랫동안 중원의 일상이었던 한푸의 쇠퇴

1368년 몽골족의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는 몽골과 고려의 영향으로 당시 퍼졌던 북방민족의 복식 특징(상의와 바지가 나눠진 이부식(투피스, two-piece))을 청산하고 예전 한족 왕조의 한푸를 회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만주족의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옷인 치파오를 강요하면서 한푸는 수백 년간 단절의 시기를 겪는다.

물론 만주족의 치파오 강요는 여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했기에 한족 여성들은 계속해서 한푸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갈수록 한족 여성의 복식은 만주족과 한족의 것이 뒤섞이는 형태가 되어갔다. 단추를 사용하는가 하면 바지를 입기도 했으며 화려하게 옷을 꾸미게 된 것이다.

한편,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전통 한푸는 부활하지 못했다. 1920년대 이후부터 서구식으로 변형된 치파오가 여성들에게 널리 퍼진 탓이었다. 또한 1960년대의 마오쩌둥이 주도한 반달리즘 운동인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한푸는 타파해야 할 악습으로 여겨져 또 한 번 탄압받게 된다.

한푸를 입은 중국 젊은이들 [출처- 플리커, hanfulove]
한푸를 입은 중국 젊은이들 [출처- 플리커, hanfulove]

현대 한푸의 부활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다시 한푸가 유행한다고 한다. 각종 현지 매체에서도 한푸 판매량과 제작 업체 증가률이 몇 년 사이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영방송 CCTV는 한푸시장 소비자가 200만 명을 넘었으며 시장 규모도 약 10억9000만 위안(약 1829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중국 사회의 민족주의 의식 및 개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는 것을 꼽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치파오보다는 오랜 한족의 전통 의상이었던 한푸가 부활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젊은 층에게 이러한 한푸가 이색적인 의상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한푸는 오늘날 나름대로 정형화된 치파오와는 달리 5000년에 가까운 방대한 세월과 수십 개의 왕조를 거치며 아주 다양한 변천 과정을 거쳤다는 점과 청나라 이후에는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절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 구분과 정립이 쉽지는 않다. 오늘날 치파오가 세계인에게 알려지게 된 이유는 현대의 복식과 감성을 받아들여 새롭게 변신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푸가 이러한 치파오의 교훈을 참고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한푸 열풍은 잠시 동안의 유행에만 머무를지도 모른다. 분명 오랜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민족인 한족이 입어온 한푸는 현대에도 유용한 복식으로서 자리 잡을만한 잠재력이 있다. 한푸 열풍이 앞으로 어떻게 한푸를 변화시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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