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2-06 17:50 (금)
조각과 인쇄와 그림의 콜라보, 회화의 장르를 넘나드는 '판화'에 대해
상태바
조각과 인쇄와 그림의 콜라보, 회화의 장르를 넘나드는 '판화'에 대해
  • 최상혁 기자
  • 승인 2019.10.21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언가를 직접 그리는 것만이 회화가 아니다. 예술품과 서적을 찍어내기 위한 욕구로 시작된 판화, 현대에는 더욱 넓은 범위로 활용돼
목판화 [출처-pixbay]
목판화 [출처-pixbay]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붓에 물감을 발라 종이 등에 직접 그려낸 그림은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회화의 형태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진정한 회화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형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예술의 장르라는 것이 어느 한가지 형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찍어내는 그림, 판화

그림은 배경이 되는 표면의 재질이나 물감의 종류, 기법, 도구, 표현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미 그에 따른 종류와 붙여진 명칭도 다양하다. 특히 무언가를 직접 칠해서 그린다는 행위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회화 장르로는 바로 찍어내는 그림인 판화가 있다.

'판화(版畵, engraving)'는 어떠한 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해서 물감과 잉크 등을 칠하여 그대로 찍어내는 회화의 장르이다. 회화이지만 판을 만들고 찍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조각, 전각, 활자, 인쇄, 공예 등 아주 다양한 부분과 연관을 맺고 있다.

판화는 다른 회화 장르들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① 여러 번 찍어낼 수 있는 '복제성' ② 직접 그리는 그림과는 다른 '간접성 ' ③ 조각과 인쇄, 회화 등 다양한 부분을 콜라보한 '융합성'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밖에도 판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 좌우 반전, 다양한 종류와 표현 등이 있다.

판화는 동서양을 통틀어 오래 전부터 보편적으로 발전했다. 예술품이라는 것은 아주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때문에 판화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할 목적으로 복제를 위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민중들은 글을 모르는 경우가 다수였기에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리고자 할때 널리 그림을 복제해서 전파했을 것이다.
 

판목으로 문양 찍기 [출처-pixabay]
판목으로 문양 찍기 [출처-pixabay]

판화의 쓰임과 발전

판화는 활자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하며, 활자의 발명은 인쇄 기술을 급격하게 발전시켰다. 대중들의 교육에 대한 욕구가 커짐에 따라 더 많이 빠르게 책을 찍어낼 수 있어야 했다. 목활자와 금속활자 등 다양한 활자의 변천과 개발은 단순한 출판을 넘어 예술로서의 판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판화는 판화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기도 한 목판화가 널리 이용됐다. 목판화는 인쇄의 기술은 물론, 옷을 염색하는 날염(捺染, textile printing)과도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날염은 나무의 표면을 조각하여 문양을 새길 판목을 만들고 판목에 염료를 묻혀 면직물에 직접 찍어낸다. 디자인이 복잡할수록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며 아주 다양한 판목을 만들어야 한다. 18세기 유럽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인도의 캘리코가 대표적인 날염으로 만드는 옷인데 수천번 이상의 무늬를 찍어 옷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목판화 이외에도 점차 기술과 개성의 발전으로 인해 동판화, 석판화 뿐만 아니라 종이, 고무, 유리, 아크릴 등 다양한 방법과, 재료, 기법이 쓰이기 시작한다. 

목판화로 찍어낸 취리히 전경 [출처-pixabay]
목판화로 찍어낸 취리히 전경 [출처-pixabay]

판화의 다양한 종류

찍어내는 방식으로 판화를 분류하면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파내지 않은 부분이 찍히는 것을 '철판 인쇄' 또는 '볼록판화'라고 하며 그 반대의 경우는 '오목판화'가 있다. 이것은 도장을 파내는 전각(篆刻)의 음각 및 양각의 원리와도 같다.

그런데 석판화, 유리판화처럼 조각을 하지 않고도 찍어내는 경우도 있다. 석판화(lithography)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다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다. 석회석판 또는 금속판에 기름을 넣어 만든 재료인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물을 적시면 그리지 않는 부분에만 물이 스며든다. 이때 롤러에 잉크를 묻혀 판에 굴리면 잉크도 기름이므로 그림이 그려진 부분에만 묻게된다. 그리고 이 석판을 다시 종이에 올려놓고 찍으면 된다.

이렇게 물과 기름의 원리를 이용한 판화를 '공판화'라고 하는데 석판화, 유리판화(monotype), 마블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공판화는 평평한 판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복제가 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사물을 배치하여 찍어내며 사물의 재질을 그대로 표현하는 콜라그래피, 동판에 왁스를 바르고 선을 새긴 뒤 부식시켜서 판을 만드는 애칭 기법, 그리고 물감을 풀은 물에 종이를 찍어내며 우연성으로 만드는 마블링 기법, 오려낸 종이를 붙여 만든 판에 롤러로 발라 문지르거나 찍어내는 지판화 등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판화는 판에 의존하거나 찍어낸다라는 특성만을 가지면 어떤 것이든 해당되기 때문에 그림과 공예 등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 심지어 컴퓨터 프린팅 또는 3D 프린터에서도 판화의 원리가 적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판화는 현대에 들어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으며 실용적인 분야와 예술 모두에 활용된다.
 

'마르케사스 원주민 그림', 1902년, 모노타이프 폴고갱作 [출처-pixabay]
'마르케사스 원주민 그림', 1902년, 모노타이프 폴고갱作 [출처-pixabay]
판화로 표현한 트럼프, 앤디 워홀作 [출처-pixabay]
판화로 표현한 트럼프, 앤디 워홀作 [출처-pixabay]

피카소와 고갱을 비롯한 유명한 천재 화가들도 판화를 시도했다. 한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20세기의 대표 예술가였던 앤디 워홀도 판화를 활용했는데 특히 종이에 그림을 그린 판을 대고 그림에 따라 구멍을 뚫어 물감을 통과하면서 찍어내는 공판화(실크스크린)로 유명하다. 공판화는 좌우가 반전되지 않는다.

이렇듯 판화는 다른 회화와 다른 독특한 장르인듯 하지만 의외로 수많은 부분에 스며들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을 넘어 다양하는 모든 표현이 판화로 통칭되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시도하고 있는 판화는 앞으로도 그 활용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판화는 인쇄보다 깊은 맛이 있다.
판화는 사진보다 상상력이 있다.
판화는 조각이나 회화보다 더 크고
더 물량적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더 작고 단아하며 명징성이 있다.
판화는 컴퓨터보다 부정확하지만 인간적이다.
무엇보다도 판화는 솔직하다.
꾀를 부리면 몇 배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열심이면 꼭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 판화는 정직하다.
우리는 판화를 찍는다.
무엇이든지 판화는 아니다.
무엇이든지 판화가 될 수 있다.
내가 '판화'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판화'이다.

'판화의 개념 및 범위규정에 관하여', <홍익대학교 판화과 학생회, 1955. PP 52~5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